마약류 범죄가 크게 늘며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범죄의 일망타진을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마약 유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경찰이 온라인 사이트 등에 구매자로 위장한 잠입 수사가 불가능해 조직 전반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또 법원이 추진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도 수사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 수사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약범죄, 위장 수사 불가능해 한계=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마약류 범죄는 다크웹·SNS 등에서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가 이뤄져 적발과 추적이 쉽지 않다. 특히 마약 거래 조직 내부에서도 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점조직’ 형태를 보이는 탓에 윗선을 추적해가며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공급책·제조책 등 윗선을 타고 올라가며 마약 거래 조직의 규모와 정도를 파악해 수사하기 위해서는 위장 수사가 확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제한적으로 함정 수사를 인정하고 있다. 일반인으로 위장해 마약상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범행 현장을 적발하는 ‘기회제공형’ 함정 수사는 합법이다. 그러나 범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범의를 유발하는 ‘범의유발형’은 위법이다. 특정 온라인 사이트 등에 경찰이 구매자로 위장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잠입 수사의 합법 여부도 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수사기관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잠입 수사를 펼치기는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게다가 마약 거래 조직원으로 잠입해 조직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하는 방식은 불법이다. 경찰은 지난해 도박과 마약 범죄 위장 수사의 법제화에 관해 판례와 해외 사례, 부작용 등 법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위장수사기법은 지난해 9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도입된 상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약 수사는 위장 수사를 하지 않으면 조직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며 “범죄가 계속해 조직화되고 첨단화되는 점을 고려하면 마약 조직 내부에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수사하기 위한 위장 수사의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압수수색 사전 심문’도 마약 수사 걸림돌=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도 마약 수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초 압수수색영장 심문에 관계인을 불러 심문할 수 있도록 하고 전자 정보에 대한 영장을 청구할 때 검색어와 검색 대상 기간을 써서 내도록 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압수수색영장 심리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영장 청구서와 수사기록을 토대로 한 ‘서면 심리’ 위주인데 향후 ‘대면 심리’도 가능하게 해 사실관계를 더욱 면밀히 살피겠다는 취지다. 수사기관들은 사건 관계인을 불러 심문하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압수수색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지고 수사 기밀이 유출돼 범죄 대응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마약 수사는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다가 조직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어디로 정보가 샐지 모르는 상황이라 문제점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구체적인 ‘검색어’를 영장에 적시해야 한다면 현장에서 다른 마약 관련 단어가 들어간 자료를 찾아내도 압수수색하기 어려워진다. 피의자들은 마약을 ‘아이스’ ‘ㅇㅏㅇㅣㅅㅡ’ ‘풀떼기’ ‘술’ ‘작대기’ 등 은어로 부르는 데다가 수사를 피하기 위해 단어를 수시로 변형시키기 때문에 미리 검색어를 제출하는 건 수사에 제약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강남 학원가 사례로 인해 ‘수험생용’ ‘다이어트약’ 등 새로운 은어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법원은 6월 1일부터 개정안을 시행하기로 했지만 검찰 등의 반발이 심하자 학술대회를 열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만일 법원이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하지 않으면 ‘마약과의 전쟁’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