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숫자에만 집착하면 놓치는 것들


■서민우 산업부 차장






“대통령 말씀 중에 전기차 공장의 세액공제를 확대하라는 표현이 어디 있나요."

정부가 전기차 전용공장의 시설 투자도 반도체처럼 최대 3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세제당국의 한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세제당국이 조특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고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기차 전용공장의 핵심공정 기술과 사업화 시설을 어느 범위까지 포함할지 관련 부처와 협의를 끝냈고, 입법 예고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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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곳간을 지켜야 하는 세제당국 입장에선 ‘35%’라는 숫자가 불쾌했나보다. 더욱이 2월까지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24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세수 펑크’가 현실화됐으니 불쾌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전기차 전용공장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검토하면서도 ‘숫자’를 문제 삼아 보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큰 문제다. 해명하는 과정도, 표현 방식도 서툴고 잘못됐다.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공직자라면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이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표현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는 건 한글을 뗀 초등학생 정도면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기아 화성 전기차 전용공장을 찾아 “정부는 기업들이 이러한 혁명적 전환에 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세제 지원 등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실도 참고자료를 배포해 “정부는 국내 전기차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투자 촉진에 걸림돌이 되는 사항들도 신속히 해결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100년만의 대전환기에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각국은 정부가 직접 과감한 세제지원으로 자국의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기업에 30%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투자금의 상당액을 보조금 형태로 돌려준다. 하지만 국내엔 전기차 공장을 짓거나 전기차 시설로 전환해도 세제혜택이 사실상 없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국이 2032년까지 신차 판매의 67%를 전기차로 판매하겠다는 새 규제안을 내놓으면서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생산 능력을 더욱 늘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세제당국이 나라 곳간을 지키는 일은 당연하다. 세액공제의 폭을 정하는 것도 고유 권한이니 뭐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너무 숫자에만 집착해 현재 국내 자동차산업이 처한 현실, 그리고 대통령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할 뿐이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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