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나 홀로 화재 진압…충원부터 교육·배치 문제까지 과단성 있는 시스템 개혁 필요

'현장 경력 24년' 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

10개월 새내기 소방관 혼자 투입

1명만 더 갔어도 비극 막았을 것

센터 신설에 인력 빼내기로 대응

'5인 1조' 원칙 빈번하게 깨져

충원부터 교육·배치 문제까지

과단성 있는 시스템 개혁 필요

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이 소방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이 소방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전북 김제 새내기 소방관 순직은 혼자, 그것도 들어온 지 10개월 밖에 안 된 새내기 소방사가 화재 진압에 나서면서 벌어진 참사입니다. ‘2인 1조’로만 움직였어도 고인이 화마 속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재 현장 진압 경험만 24년에 달하는 고진영(53·사진) 소방노조 위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김제 금산 단독주택 화재 때 70대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새내기 소방관에 대해 “나 홀로 화재 진압이 가져온 비극”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고 위원장은 1999년 소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전북도와 서울에서 현장 대원으로만 활동했던 베테랑 소방관이다.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북 군산 윤락가 화재 참사와 2018년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사건 때도 직접 화재 진압에 나섰다.

그가 볼 때 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전'이다. 소방관이 없으면 국민도 보호할 수 없고 구조 요청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년 5~6명씩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2020년에는 부상자를 포함한 사상자 수가 2006명에 달했다.



고 위원장은 “사회적으로 소방관의 안전보다 수행하는 역할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여기에 구조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2007년 이후 단 한 번도 순직자가 줄어들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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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


그는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19안전센터가 화재 현장에 출동할 때는 의료진 3명이 탑승하는 구급차 1대와 기관사 1명, 화재 진압 요원 4명 등 총 5인이 타는 펌프차 1대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김제 화재 때는 이 원칙이 무너졌다. 고 위원장은 “원래 출동한 펌프차에 탈 진압 요원은 4명이 아닌 3명이었고 그나마 한 명은 행정직으로 옮겼고 또 한 명은 소방경연대회 훈련으로 빠진 상태”라며 “사실상 진압 요원이 단 1명뿐인 ‘나 홀로 진압 작전’이었던 셈”이라고 강조했다.

나 홀로 진압이 이번에만 이뤄진 특별한 사례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진압 요원을 행정직으로 돌리고 새로운 소방서가 생기면 다른 소방서의 인력을 빼내 옮기는 일이 일상화하면서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펌프차에 타는 화재 진압 요원이 4명에서 2~3명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여기에 경험이 적은 소방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0년 말 기준 소방 공무원 6만 994명 중 경력 4년 미만의 소방사는 2만 7000명으로 40%를 웃돈다.

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고진영 소방노조 위원장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소방관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 소방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면 6개월 동안 기본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배치돼야 한다. 실제로 이것이 지켜질까. 고 위원장의 대답은 ‘노(No)’였다. 소방 학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교육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승인도 나지 않은 곳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질 리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 없이 바로 현장에 배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다음날부터 소방 장비를 메고 현장에 투입됐다”고 고백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 역시 사고를 키우는 요인이다. 소위 ‘멀티 소방관’이 대표적이다. 소방 공무원을 채용할 때 현재는 기관사나 행정·진압 요원을 분야별로 별도로 뽑는 게 아니라 통합해 선발한다. 이 과정에서 또는 합격 후 교육을 받으면서 펌프차를 몰 수 있는 대형 면허를 따면 가점을 준다. 여러가지 능력을 가진 소방관이 탄생하게 되는 이유다. 그는 “소방관을 필요에 따라 펌프차도 운전하고 화재 진압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라며 “이 경우 전문성은 당연히 깨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장은 한두 가지만 해결하면 비극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채용부터 교육까지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채용부터 교육, 인력 배치까지 모든 문제를 들여다봐야 문제를 풀 수 있다”며 “과단성 있는 조직 진단과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한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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