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미국 내 지역 중소형 은행뿐 아니라 대형 은행에서도 고객 예금 유출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극소수 초대형 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에서 예금액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실상 미국 내 신용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현지 시간) 미국의 10위 금융기관인 찰스슈와브는 1분기 말 기준 예금액이 3257억 달러로 지난해 말(3667억 달러)보다 410억 달러(1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감소 폭은 30%에 이른다. 찰스슈와브는 1분기에 순이익은 1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 늘었지만 예금 유출은 막지 못했다. 찰스슈와브는 지난해 말 기준 장부상 채권 손실이 약 280억 달러에 이르러 SVB 사태 발발 이후 뱅크런 우려가 큰 곳으로 꼽혔다.
미국 자산 규모 12위 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 역시 이날 1분기 예금액(2240억 달러)이 전 분기 대비 118억 달러(5%),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고 밝혔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주요 20개국(G20)이 선정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G-SIBs)’ 30곳 중 한 곳이다. 이 은행은 특히 2분기에도 무이자 예금 40억~50억 달러가 추가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미리 투자자에게 예고했다. 이 밖에 M&T은행은 예금 잔액이 1분기 1591억 달러로 전 분기 말보다 44억 달러(3%) 줄었다고 전했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3곳의 금융기관에서 1분기 동안 빠져나간 예금액은 572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흐름은 앞서 지난주 JP모건체이스가 1분기에 예금이 370억 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씨티그룹 역시 1분기 전체로는 예금이 2.5% 줄었지만 3월에는 300억 달러가 늘어나 1조 33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실상 톱5 은행을 제외한 미국의 은행 대다수가 SVB 사태 이후 예금 유출을 겪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기 실적과 함께 발표되는 예금 추이는 지난달 은행 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의 피해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고 있다”며 “지난달 예금이 빠져나간 속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예금 감소는 신용 위축 요인이다. 예금이 줄면 은행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이는 등 여신 기준을 높이게 된다. 모건스탠리의 최고주식전략가인 마이크 윌슨은 “각종 데이터를 보면 신용 경색은 이미 시작됐다”며 “SVB 사태 이후 최근 지표가 안정된다고 해서 이를 괜찮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기업과 가계의 자금 확보가 더 어려워지면서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국제금융협회의(IIF)의 팀 애덤스 회장은 “은행 혼란은 위기가 아니라 일종의 난기류”라면서도 “리스크는 현실이고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