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식물 연구는 '현장에 답'…희귀종 찾아 백두산 20번 올라"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현진오 소장

20년 연구 '현장 가장 잘 아는 전문가'

국내는 물론 갈라파고스도 방문

추산쑥부쟁이·백양더부살이 등

국내 모든 희귀·멸종위기종 조사

온난화로 북방계 멸절 위기 처해

일반인 대상 종(種) 교육 강화해야

현진오 소장이 희귀 식물 추산쑥부쟁이(오른쪽) 등을 찍은 사진 앞에서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현진오 소장이 희귀 식물 추산쑥부쟁이(오른쪽) 등을 찍은 사진 앞에서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두산만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 올랐습니다. 몽골에서 식물을 채집해 국내에 들여오려다 반입이 안 돼 다시 돌아간 적도 있죠. 무인도는 지금도 매년 갑니다. 길도 없는 곳에서 식물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숨이 턱까지 막히고는 합니다.”



민간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20년 이상 식물에 대한 현장 연구에 매달려온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내가 하는 일은 극한 직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생물분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현 소장은 월간 ‘사람과 산’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2002년 연구소를 설립했다. 주요 사업은 정부 수행 녹세(綠勢) 조사와 프로젝트, 생물 다양성 보전 활동과 생물·생태계·환경 관련 정보를 생산하고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정보기술(IT) 사업 등이다.

생물 다양성 중에서도 그가 주목하는 분야는 식물이다. 당연히 꽃과 나무 등을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것이 주요 일과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꽃피는 3월 하순부터 찬바람이 불기 직전인 10월 말까지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무조건 산이나 섬을 찾는다. 남들이 다니지 않는 길 위주로 하루 10㎞ 이상 걷는 것은 일상이다. 현 소장은 “섬을 한 번 가면 5개 이상의 식물을 찾기 위해 말 그대로 전체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며 “한마디로 막노동”이라고 표현했다.



국내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식물은 종류로는 약 4000개, 종으로는 30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토종은 150~180개 종, 400여 종류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히말라야·중국을 통해 내려온 북방계이고 인도차이나를 거쳐 들어온 남방계도 일부 있다. 국내 식물을 연구하려면 일본·중국·러시아 등 해외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일본 쿠릴열도, 중국 연길은 내 집 드나들 듯 다녔다”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아프리카나 부탄·갈라파고스까지 간 적도 있다. 조만간 마다가스카르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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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오 소장이 자신이 발견해 이름까지 지은 희귀종 ‘백양더부살이’를 가리키며 특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현진오 소장이 자신이 발견해 이름까지 지은 희귀종 ‘백양더부살이’를 가리키며 특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현 소장이 새로 발견한 희귀종은 무수히 많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추산쑥부쟁이, 경남 거제에서 발견된 사철검은재나무, 경북 영덕에서 찾은 영덕취, 전북 내장산의 백양더부살이 등이 대표적이다. 현장과 가장 가까운 식물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멸종 위기종이 있는 현장은 거의 모두 찾아갔다”며 “모든 개체군에 대한 조사도 이미 마친 상태”라고 덧붙였다.

현 소장이 꼽은 우리나라 최대 생물 다양성의 보고는 제주도와 울릉도다. 제주도는 한라산이라는 높은 산악 지대에 빙하기 잔존식물들이 많은 것이 매력적이다. 눈여겨볼 곳은 울릉도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섬들은 과거 육지와 연결된 곳이었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한 번도 붙어 있었던 적이 없다. 한국판 갈라파고스인 셈이다. 그는 “육지와 거리가 멀다 보니 한 번 생물이 들어오면 고립돼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독특하게 진화한다”며 “심지어 울릉도와 독도도 전혀 다른 곳이다. 울릉도에 있는 식물을 독도에 이식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라고 지적했다.

현진오 소장현진오 소장


우리나라의 생물 다양성은 기후변화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동성에 제약을 받는 식물은 더 심하다. 그나마 남방계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분포 지역 확대로 대응할 수 있지만 북방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고산 지대에 서식하는 구상나무들이 잇따라 고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소장은 “식물이 기후변화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기온 상승뿐 아니라 이로 인해 나타나는 병충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지금처럼 고온 현상이 계속된다면 희귀종이나 북방계는 멸절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려면 일반 사람들도 종(種)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종을 알면 관심을 갖게 되고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생물 다양성을 온전히 유지하려면 우리 동네에는 어떤 종이 있는지, 외래종은 없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물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에서 우러나오고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예전이 생태계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생물 다양성의 시대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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