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과 별개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확장 억제와 관련된 성명을 채택한다. 핵무기를 포함한 미국의 전략자산을 운용하고 기획하는 데 한국이 상당한 수준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명문화될 예정이어서 사실상 ‘한국판 핵 공유’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언적 수준에 그쳤던 기존의 확장 억제에서 벗어나 한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보복하는 절차가 구체화되는 셈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2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물로 확장 억제 방안을 담은 별도의 문건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수석은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을 글로벌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역할을 확정할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담이) 이러한 확고한 가치 동맹의 토대 위에서 경제·기술·안보·콘텐츠 등 다방면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정상회담이 진행되기 이틀 전 미리 예고한 것이어서 미국 측이 안보 의제를 중심으로 한미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부부가 24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외교 관계자뿐 아니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사들이 대거 마중 나온 것도 안보 영역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 미군 수뇌부를 만나 동북아시아 정세 등에 대해 브리핑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장 억제와 관련된 별도 문서에는 핵전력의 공동 기획과 실행에 관한 세부 계획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공동성명 등의 방식으로 원론적인 차원의 확장 억제 방침만 확인해온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해당 성명에 대해 “한국이 확장 억제와 관련된 미국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다는 매우 명확하고 입증 가능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안보 협력이 사실상 ‘핵 공유’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러한 흐름이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로 이어질 경우 ‘아시아판 핵 공유’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설리번 보좌관이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비확산 의무를 그동안 잘 이행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신뢰 문제’에 대한 우려를 일축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사이버 안보 협력을 확대해 ‘파이브아이즈급’으로 양국 정보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대통령실은 강화된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방산 수출 확대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26일(한국 시간)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방산수출전략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국방부·외교부·방위사업청 등 정부 기관뿐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풍산 등 주요 방산 기업들도 참여한다. 정부는 분기마다 회의를 개최해 방산 수출 현안을 수립하고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백악관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를 논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한국은 이미 2억 3000만 달러 규모의 대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러시아도 제재했다”며 “우크라이나 문제는 분명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화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빈 방미 전 진행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적으로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도 “전쟁 당사국들과의 직간접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앞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시사했던 것에서 한 발 물러선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