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규모 은행에 대한 불안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미 연방정부의 채무한도 데드라인이 가까워지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 물가, 부채한도 등 미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불안 요인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금융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25일(현지 시간) 미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가는 49.4%나 급락했다. 11개 대형 은행이 제공한 300억 달러를 제외하고 올해 첫 3개월 동안 퍼스트리퍼블릭의 예금이 1020억 달러 감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시장의 불안감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웨스턴얼라이언스 주가가 5.58%, 팩웨스트방코프와 시그니처뱅크가 각각 8.92%, 15.71% 떨어졌다.
신용 경색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금 감소 우려가 클수록 고객 유치를 위해 예금금리를 올려야 하고 이는 은행 수익성이 하락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이는 대출금리를 높여 신용 공급을 줄이는 결과가 된다. TS롬바드의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블리츠는 “소규모 은행들은 대출을 줄여나갈 것”이라며 “이런 신용 타격은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CNBC는 이를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 가는 느린 출혈”이라고 표현했다.
정부 디폴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날 백악관은 공화당의 부채한도 관련 예산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할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공화당은 31조 3800억 달러인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내년 3월까지 1조 5000억 달러 상향하는 대신 내년 예산을 1300억 달러 삭감하는 내용의 예산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백악관은 “극단적인 양보를 끌어내려는 무모한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모건스탠리는 부채한도 처리 시한을 6월 초로 추산했다. 이때까지 합의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파산은 현실화한다. 채권시장은 경고음을 울렸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이날 5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1개월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0.47%포인트 급등했다. 마켓워치는 “투자자들이 미국의 부채한도 문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도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디폴트에 처하면 앞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영구적으로 높아지는 경제적 재앙이 올 것”이라며 “의회는 조건 없이 부채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의회를 압박했다.
1개월물과 달리 10년물과 2년물 국채 수익률은 각각 11.7bp(1bp=0.01%포인트), 19bp 하락했다. 골드만삭스의 비키 창 이코노미스트는 “채권시장은 경제 둔화에 가격을 매기고 있다”며 “우리는 12개월 내 경기 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미국 소비자들의 자신감도 꺾였다. 콘퍼런스보드는 이날 미국의 4월 소비자신뢰지수가 101.3으로 전월 수정치 104.0보다 하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앞으로 6개월 동안 가전제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는 소비자의 비율은 41%로 2011년 9월 이후 가장 낮았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인 팀 퀸란은 “금융 혼란과 금리 인상이 소비자의 신뢰에 영향을 줬다”며 “여기에 소비자들이 부채한도 문제에 대한 위험에 눈을 뜨면서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