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코로 들이마시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관련 사건 항소심 재판의 증거로 채택됐다.
1심은 이 화학 물질이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조사 관련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를 뒤집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는 지난달 27일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사건 2심 공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연구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2021년 1월 1심은 업체들이 가습기살균제 제조에 사용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성분들이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앞서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에 사용한 성분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선행 연구 결과가 이미 있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새롭게 증거로 채택한 정부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발표된 것이다. CMIT·MIT가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입증한 첫 연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CMIT·MIT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합성해 쥐의 코에 노출한 뒤 추적한 결과 5분 뒤 폐와 간, 심장 등에서 CMIT·MIT가 확인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들은 지난달 26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연구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라고 재판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새로운 실험 결과를 항소심에서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증거 조사 절차를 통해 검찰 측과 연구 결과의 신빙성 여부를 다투게 됐다.
지난달 27일 공판에는 김재용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가 나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간질성 폐 질환·천식은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역학조사 결과를 증언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오는 6월 8일 김 교수의 증인 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같은 달 22일에는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에 참여한 전종호 경북대 응용화학공학부 교수의 증인 신문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