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중 한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법적 제도화 논의가 시작됐다. 비대면진료 한시 허용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스타트업들은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하향조정하면 법적 근거가 사라져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정부는 이에 따라 시범사업으로 비대면진료를 이어가고 6월까지는 비대면진료 자체를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회에서도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같은 노력에도 관련 업계에서는 오히려 비대면의료가 고사할 위기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도화의 핵심은 초진을 가능하게 해주느냐 여부인데 현행 비대면진료는 초진이 가능한 반면 개정안은 재진만 허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5건 중 4건은 초진을 불허하고 있다. 이렇게 재진만 허용할 경우 시장규모는 현저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입법 전까지 제도 공백을 메워줄 시범사업조차도 진료 대상에 초진 환자를 포함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운영 중인 30여 개 스타트업들은 스스로 활로를 찾아 뛰고 있다. 기업의 생존 뿐만 아니라 그간 만들어졌던 1000여 개의 일자리가 걸린 일이다. 이들은 재진만 허용하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막아 달라며 대통령에게 편지로 호소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비대면진료 지키기 서명운동도 전개했는데 며칠 사이에 목표였던 1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3년간의 비대면진료 성과를 보면 초진 허용 여부가 왜 논란이 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 4명중 1명 꼴인 1379만 명이 비대면진료를 이용했으며 3661만 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그 사이 단순 누락?실수 외에 심각한 의료사고는 없었다. 참여 의료기관의 93.6%는 의원급이었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8%가 만족하고 87.8%는 재이용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비대면진료의 효과와 안전성 그리고 만족도가 확인됐으며 대형병원 쏠림 등 우려도 상당 부분 불식됐다고 자평했다. 이 정도면 역대급 규모의 실증이고 실증결과도 명확해 현행 비대면진료처럼 초진을 허용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는 비대면진료의 후진국이다. 1988년 비대면영상진단 시범사업이 시작됐으나 이후 시범사업만 30년 넘게 계속해왔다. 우리가 첫걸음도 떼지 못하는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비대면진료를 허용해 이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이번 사업은 전형적인 이해갈등 이슈이고 갈등해소도 어려운 난제중의 난제다. 신산업 혹은 혁신사업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이해관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많다. 법률 플랫폼은 변호사 단체, 화상 투약 시스템이나 약자판기는 약사 단체, 인공지능(AI) 안경 쇼핑 스타트업은 안경사 단체, 부동산 디지털 거래 플랫폼은 공인중개사 단체와의 갈등을 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대면진료는 이제 3년간의 실증실험을 마치고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어렵게 시도한 도전과 혁신이 또다시 좌절될까 우려스럽다. 비대면진료 범위의 축소는 혁신의 퇴행을 의미한다. 어렵게 구축한 산업생태계를 지킬 수 있도록 입법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