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기도 화성시 우성읍에 위치한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아이엠팩토리’ 준공식에 SK지오센트릭·롯데케미칼·GS칼텍스 등 국내 주요 화학 대기업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창업 8년차인 스타트업 행사에 이들이 모인 것은 이 공장이 월 1000톤의 투명 페트병을 수거해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계적 재활용 공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폐플라스틱 수거는 영세한 업체들이 품질을 가리지 않고 폐기물을 모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수거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고품질의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으로 쓸 수 있는 투명 페트병 확보는 월 10톤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이 공장을 운영하는 수퍼빈은 전국에 800여 개의 수거 로봇을 설치해 투명 페트병을 모으고 있다. 라벨을 벗기고 뚜껑을 뗀 페트병만 압축해 화성 공장으로 옮겨와 고품질의 플레이크(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공장은 40분 만에 500㎏ 분량의 플레이크 한 포대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연산 1만 톤가량 생산이 가능하다. 향후 순창에 공장을 증설해 플레이크보다 한발 더 나아간 펠릿(플라스틱 병이나 섬유를 만드는 재료) 사업도 준비 중이다. 총 3만 톤을 규모로 생산 능력을 키워 국내외 주요 화학소재 업체에 납품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준공식에 참여한 화학 기업들은 이를 위해 일찌감치 수퍼빈에 투자를 진행했다.
국내 주요 화학 기업들이 스타트업을 통해 폐플라스틱 원재료 확보에 나선 것은 그만큼 폐플라스틱 수요에 공급이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은 2023년 694억 달러(약 93조 원)에서 2030년 1200억 달러(약 16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급성장은 2030년부터 각국 정부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규제를 강화한 결과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플라스틱 생산에서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30%까지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소재 업체들도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로레알과 아디다스는 2030년 100%로, 코카콜라는 2025년 25%, 2030년 50%로 확대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30년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 비중 30%를 목표로 롯데칠성 등 플라스틱 출하량이 높은 상위 기업들에 재생원료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여전히 낮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플라스틱 재활용률(열적 재활용 제외)은 27% 수준으로 EU 평균인 38%와 비교해도 한참 뒤처진다. 업계에서는 낮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근본적인 문제로 수거 선별 시스템을 꼽는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수거·분류·처리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대부분 소각으로 처리하는 탓이다. 특히 고품질의 원료가 될 수 있는 폐플라스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거와 선별 작업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수퍼빈처럼 AI 등을 접목해 현대화가 진행된 공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187개의 공공 선별장 중 9%만 현대화가 돼 있는 실정이다.
국내 화학 기업들이 수퍼빈에 투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적인 영세 폐기물 작업장을 통해서는 고품질의 원재료를 확보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종혁 SK지오센트릭 그린사업개발실 부사장은 “수퍼빈이 페트병을 넘어 배달의 민족과 협력해 폴리프로필렌(PP)이나 폴리에틸렌(PE) 등 다른 플라스틱 재질을 수거하는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며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 차원에서 다양한 폐플라스틱 확보는 필수적이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폐플라스틱을 가지고 기계적 재활용을 통해 재생원료를 만드는 시장도 마찬가지로 영세하다. 아직 화학적 재활용이 초기 단계다 보니 재활용 시장의 90% 이상은 기계적 재활용이 차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묶여 대기업은 폐플라스틱 선별과 기계적 재활용 산업에 진출할 수 없다. 지난해 말 동반성장위원회는 3년간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영위하는 생활계 배출 플라스틱 선별업과 원료재생업에 진입 및 확장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은 원료의 안정적 공급 등에 협조하기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생 협약을 맺도록 했다. 대기업의 선별 시설 투자가 어려워진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조건을 충족하려면 해외에서 고품질의 원재료를 사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직접 뛰어들 수 없어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늘리고 있지만 제약이 많아 사업 진척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