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 1년은 경제사에 길이 남을 고강도 통화 긴축기와 맞물린다. 고인플레이션 위기에 한국과 미국은 불과 1년 만에 금리를 각각 200bp(1bp는 0.01%포인트), 400bp씩 올려 대응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의 부작용으로 레고랜드발(發) 단기금융시장 불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 나라 안팎에는 경제·금융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환율이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서면서 금융·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불안이 고조됐으나 적절한 대처로 큰 어려움 없이 넘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위기가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국가경제의 대표적 펀더멘털 지표인 경상수지는 올해 1~2월 누적 적자만도 47억 3000만 달러에 이른다. 반도체 업황 부진과 대중(對中) 수출 급감으로 무역수지는 올 4월까지 14개월 연속 적자다. 지난해와 다르게 달러에 힘이 빠졌는데도 환율이 5개월 만에 1340원을 돌파한 것도 이상 징조다. 4월 물가가 4% 아래로 낮아졌다 해도 목표 수준(2%)보다는 아직 높고 불확실하다. 물가 때문에 금리를 낮출 수 없는데 세수 부족으로 재정마저 여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 등 어려운 대외 환경에서 ‘수출’과 ‘재정’이라는 무기도 없이 2년 차 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일 외신 인터뷰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했던 1.6%보다 소폭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이날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1%까지 내렸다. ‘상저하고’에 대한 기대감은 점차 사라지고 더 나빠지지만 말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출 부진은 심각하다. 올 4월까지 누적 무역적자 규모는 250억 6000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의 52% 남짓까지 왔다. 중국 경제 및 반도체 업황 회복 등을 돌파구로 여기고 있지만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향후 과제는 수출 회복”이라며 “앞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이나 생산 의존도를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중동·인도·동남아시아 등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금리로 소비·투자가 점차 위축되는 만큼 내수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완화적 재정정책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특히 임기 5년 동안 10번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재정 여력이 바짝 메말라 있다. 2022년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67조 7000억 원으로 전년(970조 7000억 원)보다 97조 원 늘며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 정부 5년간 현금 살포 등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서 올해부터 5년 동안 갚아야 할 국채만 373조 원이다.
경기 침체로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가 일제히 줄면서 ‘세수 펑크’ 우려도 커졌다. 정부는 3월까지 총 87조 1000억 원의 국세를 걷었는데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24조 원이 적다. 정부의 올해 연간 국세수입 예상액(400조 5000억 원) 대비 3월까지 세수 진도율은 21.7%에 그쳤다. 올해 걷으려 한 세금의 5분의 1만 들어왔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치다.
공공요금 인상을 미뤄두면서 지난해 문제가 됐던 한전채발 자금 시장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공기업 부채가 문제되지만 인상할 경우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패인 부동산 문제만큼은 집값이 하향 조정되면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전세 사기와 역전세 등으로 서민 주거 불안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눈에 보이는 위기 관리에 급급하다 보니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 임기 2년 차에는 성장 동력을 찾는 노력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