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실험이 이제 일단락 지어지는 것 같다.”
이재웅 다음(Daum) 창업자가 2015년 9월 ‘다음카카오’가 ‘카카오’로 사명 변경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남긴 소회다.
당시 이 창업자는 “영속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 DNA는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사 이름은 소멸되지만 그 문화, 그 DNA, 그리고 그 문화와 DNA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으니까요”라고 강하게 아쉬움을 표시했다.
카카오가 다음과 또 다른 이별을 준비중이다. 카카오가 이달 15일 포털 다음을 별도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분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재웅 창업자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멘트도 하지 않고 있다.
카카오 측은 이에 대해 “분사나 매각을 염두에 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카카오가 보여준 ‘쪼개기 상장’ 논란 등으로 업계에서는 갖가지 시나리오가 나돈다. 다음은 2002년까지 국내 1등 포털 서비스 지위를 유지한 업체로, ‘온라인 우표제’ 도입 등 갖가지 논란으로 이후 네이버에 포털업계 정상자리를 내준 바 있다.
‘굴러온 돌’ 카카오에.. ‘박힌 돌’ 다음 사라지나
무엇보다 이번 카카오의 결정으로 2014년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하며 제기됐던 ‘다음 지우기’ 논란에 다시금 불이 붙는 모습이다. 카카오는 2014년 당시 국내 포털업계 2위였던 다음과 합병한 후 ‘다음뷰’를 비롯해 다음지도·다음클라우드·팟인코더·다음뮤직·다음여행 등의 서비스를 종료해 이를 카카오 관련 서비스로 대체했다. 김기사는 ‘카카오내비’로 다음tv팟은 ‘카카오TV’로 통합하며 카카오 단일 브랜드로 서비스명을 통합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다음 핵심 서비스인 이메일의 ‘다음 아이디’ 로그인을 중단하고 카카오 계정과 통합로그인만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꾸기도 했다. 이번 다음 CIC 출범으로 카카오의 ‘다음 지우기’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다음 출신 인력들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14년 당시 다음이 존속법인, 카카오는 소멸법인 형태로 합병 된데다 합병 1년전 기준 다음 매출이 2650억원으로 카카오 매출(210억원)의 10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수도 2013년 기준 다음이 1600명 가량으로 카카오(800여명)의 2배 수준이었다.
다만 ‘다음카카오’의 주도권을 다음이 아닌 카카오가 쥘 것이라는 것은 이미 합병당시 지분율 만으로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당시 양사간 합병으로 기존 다음의 최대 주주였던 이재웅 창업자의 다음카카오 지분율은 4.1%로 기존 다음지분율(13.7%) 대비 크게 낮아졌다. 지분율 순위로만 보면 이 창업자는 5대 주주에 불과했다.
반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다음카카오 지분율은 기존 카카오 기준 29.24%에서 합병 후 22.23%로 다소 낮아졌지만, 1대 주주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이 때문에 당시 카카오가 다음을 통해 주식시장에 우회상장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다음카카오의 기업문화 또한 카카오가 주도했다. 양사 합병당시 임직원의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다음 특유의 문화와, ‘브라이언’ 등 임직원 간 영어이름을 썼던 카카오 특유의 문화 중 카카오의 영어이름 문화가 다음카카오를 장악한 것이 대표적이다.
합병 후 카카오 대표의 이력만 보더라도 다음 출신은 사실상 전무하다. 2014년 통합당시에는 이석우(카카오)·최세훈(다음) 공동대표 체제였지만 이후 대표자리에 오른 임지훈 씨는 김범수 창업자가 설립한 케이큐브벤처스 대표 출신이다. 이후 여민수·조수용 공동대표를 비롯해 남궁훈, 홍은택 등은 모두 김범수 창업자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공동 설립했던 NHN 출신이다. 계열사를 보더라도 문태식 카카오VX 대표,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재용 카카오픽코마 대표,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등이 NHN 출신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다음 CIC 대표를 맡게된 황유지 현 다음사업부문장 또한 NHN 출신이라는 점에서 다음 출신들의 불만이 상당할 전망이다. 황 신임 대표는 2008년 NHN에 입사해 뉴스서비스팀과 이용자경험(UX) 책임연구원 등으로 일하다가 다음카카오가 출범한 2014년 카카오로 이직했다. 한때 포털 업계 1등 사업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다음 출신들로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좌편향 논란에 매출까지 급감.. ‘계륵’된 포털 서비스
이 같은 추세를 보면 결국 카카오는 포털 ‘다음’ 서비스 비중을 점점 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포털 다음의 뉴스 노출 알고리즘이나 관련 댓글과 관련해 ‘좌편향’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서비스 운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카카오의 포털 분야 수익 또한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국정감사 등 정치 이벤트에 창업자나 대표이사가 호출되는 일이 잦아 점점 ‘계륵’같은 존재가 돼 가고 있다.
실제 카카오의 올 1분기 포털비즈 부문 매출은 836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무려 27% 감소했다. 카카오가 톡비즈와 기타 분야 플랫폼에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와 18%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비용·편익 측면에서 봤을 때 각종 ‘정치 리스크’ 등으로 포털 운영에 따른 보이지 않는 비용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이에 따른 편익은 빠르게 감소 중인 만큼 서비스 중단 카드를 만지작 거릴 수밖에 없다.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 투자총괄 대표 또한 4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체적으로 비용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며 경쟁력 낮은 사업은 정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손익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포털 서비스 또한 ‘다음’이 아닌 ‘카카오’로 브랜드명을 변경하거나, 아예 모바일에 최적화된 신규 검색 서비스를 론칭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한다. 특히 오픈 AI의 ‘챗GPT’ 출시 등 생성형AI 기술 고도화로 기존 검색시장 패러다임이 급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키워드 검색 위주의 포털 서비스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실제 카카오는 4일 컨퍼런스콜에서 한국어 특화 초거대 인공지능(AI) 서비스 모델 ‘코GPT’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코GPT 2.0’을 기존 일정 대비 몇개월 늦춘 올 하반기에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해당 서비스 고도화에 힘을 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포털 ‘다음’이 수년내에 서비스 형태가 크게 변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