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가상자산 법제화다.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법안 미카가 유럽연합 의회를 통과하는 등 전세계적인 가상자산 법제화 물결이 일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 2년 만에 실질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1단계 법안을 우선 통과시키고 그 외 현안들은 2단계로 미루는 방식으로 단계적 입법을 추진한다.
문제는 이 같은 당국의 기조가 그간 모호했던 가상자산 관련 규제 명확성을 바로 세우려 하는 전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이용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미명 하에 가상자산의 정의 등 기본적인 논의조차 후순위로 밀렸다. 가상자산을 종류별로 분류해 세밀한 규제를 적용하도록 한 미카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자금세탁방지가 목적인 특금법으로부터 가상자산 정의를 그대로 차용해왔기 때문에 블록체인 대중화를 이끌 ‘킬러 콘텐츠’로 지목되는 대체불가토큰(NFT)의 가상자산 해당 여부마저 법적으로 정립되지 않는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한 국회가 산업 전반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한 골치 아픈 현안들엔 입을 다문 채 졸속 법안을 만들어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간 업권법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업계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법제화 논의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국내 업계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오히려 해외 업체나 법조계가 ‘말도 안 되는 법안’이라며 들고 나서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바이낸스와 블록체인법학회가 주최한 ‘디지털 혁신 학술 포럼’에서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많은 가상자산 관련 규제들이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닌 ‘그림자 규제’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하면서도 이를 위한 법률을 두지 않은 상황으로 국민으로서 분개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시적인 법 조항에 근거하지 않는 그림자 규제는 당국이 사업자를 임의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림자 규제 하에선 업계가 당국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치코인’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 낙인이 찍힌 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규제 공백 상황에서 혹시라도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 업계가 입을 닫은 사이 업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업권법이 탄생하는 악순환이 발생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