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소기업은 돈을 벌 생각만 하지 번 돈을 나눈다는 인식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 인식이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기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부의 대물림’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윤병섭 가족기업학회장은 서울 삼성동 서울벤처대학원대 연구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오너는 사회에 항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윤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약 98%는 형제나 부자 등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기업으로 추정된다. 공기업이나 기술을 보유한 동료들끼리 설립한 벤처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삼성·LG·현대 등 대기업도 출발은 가족기업이었다.
가족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주주가 곧 최고경영자(CEO)이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리스크에 대한 책임 회피 우려도 적다. 일반 기업에 비해 우수한 성과를 내는 이유다. 세계적인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비가족기업의 매출액은 매년 6.2% 증가했지만 가족기업은 7%씩 증가했다. 그는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회장처럼 가족기업의 CEO는 결단력과 혜안을 가지고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수 있다”며 “가족기업은 기업가정신과 동의어나 다름없다”고 역설했다.
윤 회장은 ‘기업은 공공재’라고 말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의미다. 특히 기술과 도전으로 대표되는 기업가정신의 대물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가업 승계에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기술과 기업가정신의 대물림을 가로막아 국제경쟁력을 갉아먹는 수준까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게다가 상속세를 낮춰도 기업 성장에 따른 법인세 또는 부가가치세 확대 등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실제로 과거 한국세무학회가 자산 규모 5억~1조 원의 제조업 172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업체당 평균 상속세는 약 92억 4500만 원 정도였지만 상속 후 3년여가 지나면 법인세·근로소득세·부가가치세 등 누적 세금 납부액이 91억 8800만 원에 달했다.
기업 승계는 일자리 측면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족기업이 대부분인 중소기업이 국내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당 기업을 둔 지역사회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윤 회장은 “가족기업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와 직원 고용에 큰 역할을 한다”며 “기업 승계는 곧 지속 고용”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가족기업에 대한 시선을 언제나 불편하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거부감이 모든 장점을 압도할 만큼 강한 탓이다. 개발 경제 시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독식한 기업들이 승계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거나 지분 갈등을 일으키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탓이 컸다. 그는 “창업 초기에는 잘나가던 기업들도 규모가 커지고 후대로 이어질수록 후계나 지분 구조를 둘러싸고 내부 마찰음이 커지게 된다”며 “돈에만 관심을 두는 ‘재화만사성(財貨萬事成)’이 만연한 것도 부정적 인식을 키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가족기업이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려면 사회적 역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조언한다. 그는 “요즘 중소기업들은 돈 버는 데 혈안이 됐지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며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을 향해 그 누구도 부의 대물림이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가족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일본처럼 승계와 관련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일부러 규모를 키우지 않는 기업에 대한 규제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윤 회장은 “기업 분할 등 중견기업으로 가지 않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부리는 꼼수를 제도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기업 분할에 대한 규정을 엄격히 하고 중소기업 관련 법을 통폐합하는 대신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