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전승절 연설에서 개전 이래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으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도 이날을 ‘유럽의 날’로 선포하며 응수하는가 하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우크라이나를 찾아 결속을 과시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 행사에서 “오늘날 문명은 다시 결정적인 전환점(turnig point)에 섰다. 우리 조국을 상대로 다시 ‘진짜 전쟁(real war)’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2월 이후 고수해온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는 10분가량 진행한 연설에서 “서방 엘리트가 증오와 러시아 혐오를 퍼뜨리고 있다”며 “러시아는 평화·자유·안정의 미래를 보고 싶어한다. 러시아 전체가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전승절은 5월 9일로 옛소련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에 맞서 승리해 항복을 받아낸 날을 기념한다. 푸틴 대통령은 매년 성대한 전승절 열병식을 열어 정권의 정통성과 군사력을 과시해왔다. 올해는 옛소련 독립국가연합(CIS) 정상들을 대거 초대해 세를 과시했다. 벨라루스 등 친러 국가는 물론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해온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도 참석했다. 다만 러시아가 앞서 3일 크렘린궁에 가해진 드론 공격의 배후로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지목한 가운데 추가 사보타주(비밀 파괴 공작)를 대비한 듯 최고 수준의 안보 태세를 갖췄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러시아는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을 향해 러시아군 순항미사일을 약 25발 발사했으며, 우크라이나 공군 측은 이 중 23발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전승절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9일을 새로운 기념일인 ‘유럽의 날’로 지정했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러시아와 같이 9일을 전승절로 기념했으나 이를 8일로 바꿨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유럽의 날 지정을 축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통합, 대러 제재 관련 결정을 논의하며 결속을 재확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다음 달이면 EU가 우크라이나를 회원 가입 후보국으로 지정한 지 1년이 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EU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오는 10월이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약속도 재확인했다. 그는 앞서 우크라이나행 기차에서 기자들과 만나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 우크라이나는 우리 유럽 가족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가 키이우에 순항 미사일 약 15발을 쐈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도착 약 1시간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
한편 유럽의회는 이날 방산업계 생산역량 확대를 골자로 한 탄약생산 지원법(ASAP) 제정을 위한 이른바 ‘패스트 트랙’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약속을 이행하면서 EU 회원국의 재고를 빠르게 비축하는 게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