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근로 여건이 우수한 대기업이 장애인 사업장을 설립하기 쉬워진다. 정부는 장애인이 더 많은 기업에서 일하도록 교육 훈련과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가 기업에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스스로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14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6차 장애인 고용촉진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장애인 기본 계획은 범 정부 차원에서 5년 단위로 만들어진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을 늘리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푸는 것이다. 정부는 지주회사 체제 내 자회사끼리 또는 손자회사끼리 공동출자를 통한 사업장 설립을 특례방식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현행 지주회사 제도는 복수 계열사간 공동출자를 불허한다. 그동안 경영계는 이 규제를 풀어야 장애인 고용이 늘 수 있다고 요구해왔다.
특히 표준사업장은 영세하거나 장애인 고용 의무 준수에 급급한 대다수 장애인 사업장과 달리 대기업이 주도하는 덕분에 근로 여건이 훨씬 낫다. 작년 말 기준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128곳으로 6117명의 장애인이 근무한다. 이 중 중증장애인은 78%나 차지한다.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이 더 많이 일할 수 있을 만큼 근로 환경이 잘 갖춰졌다는 얘기다. 생산가능 장애인구 중 발달장애인 비중은 작년 17%에서 2030년 2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기업이 더 우수한 장애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확충한다. 민간기업과 공공기관만 허용되던 연계고용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으로 확대된다. 기업이 장애인 채용을 전제로 직업훈련을 하면 부담금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고용기여 인정제도 도입된다. 또 정부는 3곳이었던 장애인 디지털 훈련센터를 2025년까지 17곳으로 확대하고 2024년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애인 훈련시설을 만든다.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 전용 공공훈련기관 신설안도 검토한다. 장애인력 숙련도를 높이는 융복합 훈련직종도 11개서 2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정부는 장애인 고용이 기업 선의로만 기댈 수 없다는 점도 이번 대책 방향에 담았다. 기존 의무불이행 기업 명단 공표제도를 강화하고 의무고용율 미만 대기업에 대해 고용 컨설팅 사업을 확대한다. 또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직접 지원도 강화됐다. 작년 3850명이던 출퇴근 비용 지원 대상자는 올해 1만5000명으로 4배 가량 늘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의무고용률, 부담금 등 전통적인 정책 수단으로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장애인이 재능을 발휘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