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기자가 찾은 경동나비엔(009450) 에너지 기술 연구소.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 밀집지역에 지하 1층~지상 10층으로 우뚝 솟은 건물 전체가 경동나비엔의 ‘심장’으로 불리는 연구소였다. 겉모습은 일반 오피스 건물처럼 투박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팽팽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구소 곳곳에 ‘사진 촬영 금지’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고, 출입이 허가되지 않으면 내부 모습을 아예 볼 수 없게 보안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연구실 내부에 들어서자 건강한 남성 3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난방기기를 작동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연구원들으 난방기기와 연결된 노트북 앞에 서서 모니터로 전달되는 여러 수치들을 실시간으로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덨다. 한 연구원은 "유럽 등으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제품을 시험하고 있다”며 “현지 국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시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수치들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동나비엔은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을 매년 늘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오히려 투자를 확대했다. 실제 2020년 253억 원, 2021년 327억 원, 2022년 37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3%를 넘어섰다. 연구개발 성과도 탁월하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특허만 497건에 달할 정도다. 경동나비엔 R&D본부를 이끄는 황인수 부사장은 “R&D 본부 직원이 약 350명으로 전체 임직원 중 약 25%”라며 “작년 영업이익의 60%를 웃도는 금액을 R&D에 투자할 만큼 공격적인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기술개발 투자는 경동나비엔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업계 최초로 ‘순간식 온수기’를 통해 미국 시장을 뚫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현지 맞춤형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특히 미국 온수기 시장에서는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경영실적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매출 1조 1609억 원을 기록해 1조 원을 돌파했으며, 전체 매출 중 70%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황 부사장은 “보일러·온수기 등 전통적 난방 기기 회사에서 환기, 냉방 등 생활 환경 가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목표”라며 “새로운 시장 개쳑을 위해 앞을도 R&D에 더 많은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올해 경동나비엔의 R&D 성과가 기대되는 분야는 냉난방공조(HVAC) 시장이다. 회사측은 올해 초 글로벌 HVAC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이를 통해 2032년까지 매출을 지난해 10배 수준인 10조 원으로 키우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첫 전략 제품은 장기간 R&D를 거쳐 올 3분기께 선보일 예정인 ‘콘덴싱 하이드로 퍼내스’다. 퍼내스는 고온 배기가스로 가열시킨 공기를 실내로 공급하는 북미 지역의 난방 방식으로 실내 공기가 건조하고 쾌적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콘덴싱 하이드로 퍼내스는 물과 공기의 열교환을 통해 실내로 따뜻한 공기를 공급해 이같은 단점을 줄일 수 있다. 차별화한 기술력에 보일러·온수기 분야에서 그동안 북미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네트워크·브랜드를 활용하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 판단이다. 황 부사장은 “내외부 온도 조절 및 환기 방식 등을 최적화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 “국내에서 통상 연구를 시작한 지 3년 안에 신제품이 나오지 못하면 그 사업은 보통 접어야 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존 시장에 없던 제품이거나 있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제품을 만들자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서 “미국 온수기 시장에서 1등 사업자로 올라선 것처럼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승부를 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