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지막에 뒤집었다. 쇼트트랙의 날 들이밀기 같은 짜릿한 우승. 임진희(25·안강건설)가 2만 관중 앞에서 3m 끝내기 버디로 우승 상금 1억 44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14일 경기 용인의 수원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의 18번 홀(파4). 함께 공동 선두인 같은 조 방신실의 두 번째 샷이 그린을 훌쩍 넘기면서 임진희에게 기회가 왔다. 104야드에서 친 두 번째 샷을 3m 안쪽에 떨어뜨려 놓은 것. 넣으면 우승이고 못 넣으면 앞 조 박지영과 연장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진희의 퍼트는 다소 약해 보였지만 멈추지 않았고 홀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주먹만 살짝 들어 보인 임진희와 반대로 코스는 갤러리 환호로 떠나갈 듯했다.
이 대회는 수도권의 지하철역 인근 코스에서 열려 관중이 많기로 유명하다. 최종일 2만 1000여명을 포함해 사흘간 갤러리가 3만 5000명 이상 몰렸다
11언더파의 공동 선두 임진희와 이예원, 그 뒤의 9언더파 방신실이 물고 물리는 챔피언 조 경기를 벌인 가운데 관심은 이예원과 방신실의 대결에 맞춰졌다. 올 시즌 국내 개막전 우승자인 이예원이 초반 레이스를 주도했고 후반 들어서는 초장타를 앞세운 열아홉 신인 방신실에게 시선이 쏠렸다. 임진희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치고 나가지 못했지만 나가떨어지지도 않았다.
기회가 온 것은 17번 홀(파5). 단독 선두를 꿰찬 방신실의 티샷이 아웃 오브 바운즈(OB)가 난 것이다. 방신실이 보기로 주춤한 틈을 임진희는 놓치지 않았다. 78야드 지점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홀 2m에 붙인 버디로 공동 선두를 탈환했다. 그러고는 두 홀 연속 버디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1타만 줄인 전반이 지나자 임진희는 버디만 3개로 후반을 장식했다.
임진희는 지난해 7월 2승을 올릴 때도 ‘초장타 신인’과 치열한 경쟁 끝에 우승했었다. 맥콜·모나파크 오픈에서 윤이나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와이어 투 와이어로 정상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도 1·2라운드 공동 1위 뒤 우승한 와이어 투 와이어다. 임진희는 제주 출신으로 고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늦깎이다. 국가대표는커녕 상비군 경력도 없지만 2021년부터 매년 1승씩을 쌓으면서 어엿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임진희는 “전반에 답답한 플레이가 계속되길래 우승 욕심을 버렸더니 오히려 기회가 왔다”며 "18번 홀에서 홀에 붙이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조금 약하게 퍼트한 게 들어갔다. 올 시즌은 2승 이상 하고 싶다”고 했다. 임진희의 후원사인 안강건설은 지난해 2월 창단 후 벌써 3승째다. 지난주 우승자 박보겸도 이 회사 소속이다.
방신실은 최장 294야드의 가공할 장타로 시종 “와” 탄성을 자아내며 4타를 줄였지만 이예원과 같은 13언더파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14번 홀에서 처음 단독 선두를 꿰찬 방신실은 티샷이 떨어지는 지점이 좁은 17번 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왼쪽으로 잘못 보낸 바람에 첫 승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 마지막 홀 두 번째 샷마저 어긋났고 칩샷도 길어 두 홀 연속 보기로 마감했다. 버디-버디를 한 임진희와 두 홀에서만 4타 차이가 난 것이다.
박지영이 14언더파 단독 2위에 올라 상금 선두에 이어 대상 포인트 1위에도 이름을 올렸고 이 대회 3연패에 도전한 박민지는 8언더파 공동 9위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