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인텔 CEO가 5개월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삼성전자 등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최고위 경영진과 만나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는 모바일 기기 수요에 대응할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겔싱어 CEO는 한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을 갖고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17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겔싱어 CEO는 대만, 일본을 거쳐 20일부터 21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 겔싱어 CEO는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미국 인텔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다. 그는 지난 2021년 CEO로 선임된 이후 지난해 5월, 12월 두 번에 걸쳐 한국을 찾았다. 마지막 방한 이후 약 5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겔싱어 CEO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움직임을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업계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빅 테크’ 기업 CEO인 만큼 그의 행보와 결정에 한국 IT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를 대표하는 IT 기업 삼성전자와 인텔 간 만남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미 겔싱어 CEO는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회사 최고위 경영진과 만난 사례가 있다. 인텔은 삼성전자 PC에 최첨단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하는 협력 관계이기도 하면서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시장에서는 글로벌 고객사 물량 수주를 놓고 경쟁하는 업체다. 또한 인텔 자회사 모빌아이의 칩 일부를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등 삼성전자의 고객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겔싱어 CEO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삼성전자 경영진을 두루 만나며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지난해 5월 방한했을 때는 이 회장과 만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시스템 반도체, 반도체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PC, 모바일 등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다. 12월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 사장과 만나 반도체 협력 방안과 5G 통신망과 사업 현안을 공유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삼성전자 내에서 스마트폰, 노트북 PC 등 모바일 기기 사업을 총괄하는 노태문 MX(모바일경험) 사업부 사장을 만나 올 상반기 IT 불황을 지나 하반기 회복될 모바일 기기 수요와 협력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스위스 다보스 포럼 ‘글로벌 CEO와의 오찬’ 자리에서 이 회장과 인사를 나눴던 겔싱어 CEO가 한국에서 1년만에 이 회장을 만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겔싱어 CEO는 한편 한국을 방문하기 전 일본을 들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현지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을 만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겔싱어 CEO는 일본 총리 관저에서 류더인 TSMC 회장,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CEO, 플랩 라저 반도체부문 CEO, 다리오 길 IBM 부사장 등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경영진들과 함께 기시다 총리와 회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을 책임지는 경계현 CEO도 참석할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와 일본 정부가 이들을 만나는 것은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절치부심의 성격이 짙다. 세계 반도체 업계에 일본에 대한 투자와 자국 업체와의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 정부는 TSMC가 지난해 4월 착공해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는 구마모토현 반도체 공장에 건설비의 절반인 4760억 엔(약 4조700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가 3000억 원을 들여 건설할 새로운 반도체 연구 라인에도 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텔은 미일 간 반도체 동맹 관계가 무르익고 있지만 최근 일본에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