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자사주 소각 의무화 안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금융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가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다.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코스피 3620도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자본시장법에 자사주는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고 정하면 앞으로 어떤 기업도 자사주 자체를 취득하려 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코스피 3620이 가능할까. 현재 각 상장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사주를 일거에 소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유통되지도 않고 기업의 금고 속에 잠자고 있는 주식을 소각한다고 해서 시장에 아무런 물량 변동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코스피지수가 오를 수 있나. 상장기업이 가진 자사주 모두를 소각한다면 소각된 자사주 물량만큼 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다. 장기적 효과라는 것은 요컨대 탁상공론이다.



일정 기간을 정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전부 강제로 태워 없애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는 소급입법에 의해 기업의 재산을 박탈하는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사유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그 취득목적에 따라 회사가 자본감소절차의 하나로 취득해 소각하는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자본거래로 취급하고, 그 이외의 목적으로 취득·처분하는 거래는 손익거래로 보아 과세하도록 돼있다(대법원 2019년6월27일 선고 2016두49525 판결). 자사주 취득·처분이 손익거래라는 것은 자사주란 사고팔면 손해나 이익이 되는 재산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금융위라고 해도 기업의 재산을 불태워 없애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는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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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2011년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매입하게 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 제도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논의 과정에서 자기주식 취득·처분을 통한 경영권 방어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포이즌 필 제도 도입은 무산됐다. 미국 대부분의 주 회사법과 일본 회사법 등은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제공한다. 자기주식 취득과 처분은 한국 상법이 인정하고 있는, 외부세력의 경영권 공격에 대한 유일한 방어수단인데 금융위는 이제 이것마저 없애겠다는 것이다.

자기주식의 취득과 처분은 경영권 방어수단으로서의 용도 외에도 회사 재무관리의 수단으로 주가의 안정화, 주당 순익 제고, 기동력 있는 자금조달, 합병·분할합병 등 구조조정에 활용, 스톡옵션, 교환사채·상환사채 상환 등에 쓰인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극히 부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취득과 처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입법이고 규제입법이다.

미국의 많은 주 회사법은 주주의 신주인수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자사주를 취득하면 바로 소각처리하게 한다. 이사회 결의로 언제든지 신주를 재발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처럼 법체계와 내용이 상이한데도, 외국 법의 일부 장점을 보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제도를 함부로 손댄다는 것은 한국 자본시장 기본법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위는 위험한 불장난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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