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단독] '폭탄 돌리기' 언제까지…兆단위 손실 우려에 만기 재연장 급급

■위기의 해외 부동산펀드…3년 내 30조 만기폭탄 '째깍'

'하락 전환' 美·유럽 상업용부동산에 투자금 80% 집중

4년전 펀드 절반 마이너스 경고음 불구 사후관리 부실

대부분 변제 순위 낮은 지분투자…자금회수 리스크 고조





금융투자 업계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29조 9000억 원에 달하는 해외 부동산펀드 만기 물량이 쏟아짐에도 이익을 보고 환매하는 기관투자가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고금리 지속으로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펀드 편입 자산을 매각하기가 어려워진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투자자들이 환매를 연기·중단하면서 펀드 만기만 무기한 연장하는 조치가 되풀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각 기관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해외 부동산펀드 운용사와 수익자가 연쇄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22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해외 부동산펀드의 평균 만기는 10.2년이었다. 2020년 4월 7.6년에서 2.6년이나 증가했다. 통상적인 부동산펀드의 만기 기간이 5~6년인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펀드가 만기 기한을 벌써 2배 가까이 연장한 셈이다.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균 만기 기간은 해외 부동산펀드의 부실 징후를 가늠하는 간접 수치로 통한다. 만기가 미뤄진 펀드일수록 최초 계약한 기한 내에 자산을 매각하지 못해 원금 회수에 실패한 물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운용사들은 투자한 해외 부동산의 가치가 손실권까지 떨어지면 수익자들에게 동의를 구해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펀드 자산을 매각하려다 불발돼 환매가 중단된 경우에도 만기 연장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 등 유동성이 높은 투자자산은 손실을 보고 있더라도 수익자가 환매를 원하면 손절할 수 있지만 부동산은 다르다”며 “해외 부동산펀드에 편입된 자산이 팔리지 않아 물려 있는 규모가 꽤 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전경. AP연합뉴스미국 뉴욕 맨해튼 전경. AP연합뉴스



실제로 업계에서는 해외 부동산펀드의 상당수가 이미 큰 손실을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19년 당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발표한 ‘부동산펀드 현황’에 따르면 국내 상위 15개 자산운용사의 해외 부동산펀드 401개 가운데 48%인 191개가 그때부터 이미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2019년 기준으로 손실이 가장 컸던 펀드는 80%의 손실률을 보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하나대체투자뉴리더웨일즈사모부동산투자신탁4-1~3호’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브라질월지급식부동산투자신탁1호(분배형)’와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브라질사모부동산투자신탁2호’는 72.4%, 한화자산운용의 ‘한화밸류애드스트레터지사모부동산투자신탁2호(재간접형)’는 31%, ‘한화프루덴셜US부동산채무사모부동산투자신탁1호(재간접형)’는 22.7%의 손해를 각각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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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맵스프런티어신탁1호 펀드를 10%대 손실 구간에서 청산했고 남은 펀드는 2025년 만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화자산운용은 프루덴셜펀드를 청산한 상태에서 밸류애드펀드가 내년 만기를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대체투자는 2019년 이후 손실이 지속되고 있다며 그 사이 환매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펀드 대다수가 4년 전보다 금리와 상업지구 공실률이 크게 오른 현 상황에서 부실 규모를 더 키웠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9년 자료를 작성했던 국회 관계자는 “실태 조사를 해보니 자산운용사들이 현장 실사도 없이 현지 중개인의 말만 듣고 계약한 경우가 많았다”며 “사후 관리가 부실해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것으로 걱정했는데 현실화됐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올 들어 해외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가장 탄탄한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에서조차 경고음이 울릴 정도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4분기 대비 0.76% 하락했다. 전 분기 대비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뒷걸음질 친 것은 2011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 은행의 대출 기준 강화가 반복돼 대출 연장이 안 된 부동산 소유주가 연쇄적으로 매각에 나설 경우 시세가 추가로 급락할 위험도 있다.

공실률도 치솟는 중이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맨해튼 사무실의 공실률은 18.2%였다. 이는 2003년 17.6% 이후 최고치다.

해외 대체 투자 부실 점검 보고서를 작성한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해외 부동산펀드는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의 80%를 집중했다”며 “대부분 변제 순위가 낮은 지분 투자, 메자닌(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 대출 등 고위험 형태로 구성돼 있어 부실화될 경우 투자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외 부동산펀드의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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