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공식화하자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한 임원은 22일 “앞으로 중미 갈등 진행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마이너스섬 게임’에 걸려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점검해보면 우선 중국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대해서도 제재에 나설 것인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생산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D램(40%)과 낸드(20%)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반도체 시장에서는 “중국이 한국 기업까지 제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중화권 일부 외신들은 마이크론 제재 이후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반도체 업체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나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 등을 봤을 때 한국 기업마저 제재하면 중국 내 반도체 수요를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문제는 이 경우 오히려 미국이 나서 한국에 대중국 반도체 수출제한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제재 동참 수위에 따라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막대한 매출 하락을 볼 수밖에 없다. 중국 역시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제재 동참 요구 가능성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면서 “이 같은 행위는 자신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만약 우리 기업이 중국 제재에 나서면 중국 역시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희토류나 농산물처럼 우리나라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등에 관세를 높게 매기거나 아예 수출제한을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반도체 산업의 불티가 다른 산업으로까지 튀게 된다는 의미다.
재계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제재가 중국이 새로운 반도체 표준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1차선 위에서 한국과 미국·대만 등을 쫓아오던 중국이 앞으로는 아예 차선을 바꿔 추월에 나설 것이고 이런 시도가 성공할 경우 한국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