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두고 전문가들은 “무너졌던 한일의 신뢰 관계가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후속 조치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연이은 정상회담을 통해 시각차를 좁히며 협력의 공간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관계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윤석열 정부가 안보·공급망 협력을 현실로 옮길 제도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됐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는 한일 정상의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라며 “한일의 공감대 확장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달 7일 서울에서 한국인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슴 아프다”는 개인 입장을 표명했고 강제징용 피해자이기도 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에 대한 공동 참배를 윤 대통령에게 먼저 제안해 21일 실행에 옮겼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도 “기시다 총리가 신중한 측면은 있지만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다 진전된 태도를 보이면서 한미일 공조도 탄력을 받게 됐다. 21일 히로시마에서 한미일 정상은 조만간 ‘워싱턴 3자 회담’을 열고 새로운 수준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세 나라 정상이 별도의 일정과 장소를 조율해 회동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 자체로 한미일 공조 도약의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히로시마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보여준 모습은 한미일 협력이 인도태평양 정책 촉진을 위한 미국의 요청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킨다”며 “구체적 협력 기대를 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취해야 할 다음 단계 조치로는 ‘협력의 제도화’가 꼽힌다. 한미일 정상이 ‘새로운 수준의 공조’에 합의했지만 초석이 마련된 것일 뿐 정책 실행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상 간 언어만으로 협력이 명문화·구체화된 것은 아니다”라며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을 중심으로 한미일이 어떻게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지, 대잠 및 대북 훈련에서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나갈지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도 “국제사회에서 대접받는 국가를 넘어 국익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일 공조를 예의 주시하는 중국·러시아에 대해서는 협력의 불가피함을 설득하며 그 토대에서 관계를 설정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 교수는 “우리 정부는 미일과의 협력 없이는 안보·경제성장 등의 국익을 보장할 수 없는 정책 환경을 중국·러시아와 소통해야 한다”며 “3국 공조가 특정 국가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중국·러시아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