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전혀 굽히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어요.” 무릎 부상에 시달리던 ‘메이저 사냥꾼’이 당당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브룩스 켑카(33·미국)가 다시 한번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LIV 골프 소속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켑카는 22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오크힐CC(파70)에서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PGA(미국프로골프협회) 챔피언십(총상금 175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4개로 3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 합계 9언더파 271타로 공동 2위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 스코티 셰플러(미국·이상 7언더파 273타)를 2타 차로 제치고 PGA 투어 통산 9승째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315만 달러(약 41억 8000만 원)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PGA 투어는 켑카의 시대였다. 켑카는 이 기간에만 US 오픈 2승(2017·2018년), PGA 챔피언십 2승(2018·2019년)을 포함해 6승을 올렸다. 6승 중 메이저 승수가 4승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PGA 투어 통산 9승 중 5승을 메이저 트로피로 채운 그는 역대 20번째로 메이저 5승 이상을 거둔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시련도 있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19년 왼쪽 무릎 인대 재건 수술을 받은 켑카는 2021년 2월 피닉스 오픈 우승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결국 지난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후원하는 LIV 골프로 이적했다.
LIV 골프 합류 후 켑카는 2승을 올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달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에서는 1~3라운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 날 욘 람(스페인)에게 역전을 허용해 준우승에 만족했다. 일각에서는 LIV 골프가 3라운드 방식이라 4라운드에서 힘을 못 썼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메이저 사냥꾼’은 워너메이커 트로피(PGA 챔피언십 우승컵)를 품에 안으며 주변의 비판을 보기 좋게 걷어찼다.
또 켑카는 이번 우승으로 미국·유럽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 선발 가능성을 부풀렸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켑카는 “2등은 했고, 우승하고 또 우승하면 나를 안 뽑기는 힘들 것”이라며 “모든 것은 잭 존슨에게 달렸다. 나는 그를 위해 경기하고 싶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라이더컵 미국팀 단장 존슨은 대회 직후 “켑카도 얼마든지 라이더컵에 출전할 자격이 있다”면서도 “LIV 골프 소속 선수의 라이더컵 합류에 대해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켑카는 이날 공동 2위 호블란(노르웨이), 코리 코너스(캐나다)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 2~4번 세 홀 연속 버디로 경기 초반부터 독주에 나선 그는 6번·7번 홀 보기로 한때 1타 차까지 쫓겼다. 하지만 켑카는 마스터스에서의 악몽을 이번에는 깨끗이 씻어냈다. 16번 홀(파4)에서 티샷으로 311야드를 날린 후 세컨드 샷을 핀 1.5m 옆에 붙여 간단히 버디를 낚았다. 이 사이 호블란은 더블 보기를 범해 4타 차로 우승에서 멀어졌다. 경기 후 켑카는 “정말 멋진 일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그저 행복할 뿐이다. 할 말을 잃을 정도”라고 말했다.
브라이슨 디섐보(미국)가 3언더파 공동 4위, 캐머런 스미스(호주)가 1언더파 공동 9위로 LIV 골프 소속 선수들이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공동 7위(2언더파),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컷 통과에 성공한 이경훈은 공동 29위(5오버파)다. 마스터스 우승자 람은 공동 50위(7오버파)에 그쳤다.
셰플러는 이 대회 준우승으로 람을 세계 2위로 밀어내고 세계 1위에 복귀했다. 켑카는 44위에서 13위로 껑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