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누구를 위한 비대면 진료인가"…환자도 의사도 약사도 불만

■내달 시범사업 앞두고 혼란 가중

의사들 초·재진 입증 요구에 난감

약배송도 거동불편 등 예외적 허용

현장목소리 외면·기준 주관적 논란

워킹맘 "사실상 이용 불가능해져"

플랫폼업계 "사형선고…재검토를"

"예외 등 모호한 규정 구체화해야"





“요즘 진료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디까지나 잘 되는 병원들 얘깁니다. 소아청소년과도 지역마다 특정 병원 쏠림 현상이 심하다 보니 새로 시작한 곳들은 환자가 부족해 경영난에 시달리곤 하죠. 남들이 문을 닫는 늦은 밤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있어 병원 운영에 제법 도움이 되었는데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모양입니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의원을 운영 중인 김 모씨(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작년 7월부터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한 야간진료에 참여하고 있다. 개원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와 병원 운영이 어렵던 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플랫폼과 제휴를 맺었는데 감염 우려로 내원을 꺼리던 환자 보호자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큰 도움을 받았다. 늦은 시간까지 병원 문을 열고 비대면 진료에 참여해 온 것도 지역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환자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시범사업 추진 방안을 접한 뒤 비대면진료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적용 대상이 크게 제한되면서 플랫폼 이용자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에다. 그는 “소아 환자는 휴일, 야간 시간대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예외조항을 뒀다지만 현행 시범사업안은 결국 참여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밤새워 비대면 진료를 켜둬도 몇명의 환자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참여하는 의사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열흘도 남지 않은 가운데 현장의 혼란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분위기다. 환자도 의사도 약사도 불만인 “도대체 누구를 위한 비대면진료인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초·재진 여부 확인 등 비대면 진료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에 불만이 컸다. 초·재진 여부는 병원이 보유한 개인 의료정보라 플랫폼은 원칙적으로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환자가 30일 이내 해당 병원 이용 내역과 질환 내용을 전달하면 의사가 일일이 확인하고 진료를 통해 동일 질환이 맞는지 검증해야 하는데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부산 금정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최모씨(내과 전문의)는 “만약 환자가 같은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진료를 요청했는데 연결해보니 아닐 경우 의사는 진찰료도 없이 시간을 허투로 쓴 것이 된다”며 “초·재진 여부는 현장에서도 적용하기 어려워 나중에 심평원의 확인을 받아야 확정된다. 진료는 의사가 결정하는 것인데 왜 초·재진에 집착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비대면진료를 하고도 약은 직접 타야 한다는 조항도 논란거리다. 지금은 환자가 약사와 협의해 택배나 퀵 배송으로 약을 받을 수 있는데 다음 달부터는 거동이 불편한 경우 등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서울시 구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모씨(약사)는 “거동 불편이란 기준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다. 실제 비대면 진료와 약배송에 참여하던 의사, 약사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며 “비대면 진료를 유지한다더니 자연 소멸하라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며 만족도가 높았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대표적이다.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진료 뿐 아니라 본인이 아플 때 비대면 진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아쉽다는 반응이다.

정부의 시범사업안을 접한 플랫폼 업계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보건복지부가 의약단체와 이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비대면으로라도 건강을 관리하고자 했던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비판도 쏟아냈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반발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약 4개 단체는 “소아청소년은 표현이 서투르고 증상이 비전형적인 환자군 특성이 있는 만큼 반드시 대면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며 초진 허용 예외조항을 문제 삼았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대면 진료 전면 금지와 함께 비대면 진료 시 발생 가능한 의료사고 등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사항도 내놨다.


안경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