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과금모델에 지친 이용자 이탈 및 신작출시 지연 여파 등으로 게임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게임 이용으로 돈을 버는 ‘P2E(Play to Earn) 게임’ 합법화 로비 논란까지 더해지며 게임산업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기반한 다양한 사업모델(BM) 출시로 최근 5년여동안 게임업계가 누려왔던 ‘실적파티’가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주요게임 지식재산권(IP)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했지만, 과도한 ‘현질(현금결제) 유도’ BM 도입이 결국 이용자 이탈로 이어지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던 5년이었다’는 탄식도 나온다.
국내 상장 게임사 실적.. 1년새 반토막
23일 서울경제신문이 크래프톤·엔씨소프트·넷마블·카카오게임즈·펄어비스·컴투스·위메이드 등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요 7개 게임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올 1분기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 합산액은 2872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이들 7개 기업의 영업이익 합산액이 5941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치다. 국내 게임업계 부동의 1위인 넥슨은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어 이번 실적 집계에서 제외했다.
이들 기업 중 ‘리니지’ 시리즈로 최근 몇 년간 승승장구 했던 엔씨소프트의 이익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분기에 244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올 1분기 실적은 816억원에 그쳤다. 리니지M·리니지2M·리니지W 등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 출시 때마다 불거졌던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과금모델 논란이 5년째 이어지면서, 리니지 IP의 수익창출력이 예전만 못한 모습이다. 이외에도 최근 가상화폐 ‘위믹스’ 논란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위메이드 올 1분기 46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전환했으며 넷마블과 컴투스는 영업손실폭이 확대됐다.
게임업계의 실적 감소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중국이 게임 이용 허가증인 ‘판호 발급’을 제한하며 중국 시장 공략이 어려워 진 것이 첫손에 꼽힌다. 실제 국내 게임사들은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를 제외하고는 중국 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몇년새 돈을 써야지만 이길 수 있는 이른바 ‘P2W(Pay to Win)’ 게임 출시가 늘어나면서, 과도한 과금 유도에 지친 게임 이용자들의 반발 및 피로도가 커진 것 또한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엔데믹’에 따른 게이머들의 야외활동 증가 및 ‘원신’으로 대표되는 중국 게임사들의 국내시장 내 점유율 확대 또한 국내 게임사 실적에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일부 게임사들이 코인 발행과 연계된 P2E 게임 활성화로 매출 확대를 기대했지만, 최근 김남국 의원의 게임사 코인 투자 논란으로 P2E합법화가 요원해진 모습”이라며 “게이머들의 승부욕을 자극해 수익을 내는 ‘리니지라이크’ 형태의 게임에서 벗어나, 게임 본연의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게임개발에 집중해야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배틀그라운드’ 같은 흥행작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너도나도 ‘리니지라이크’.. 지갑닫는 ‘린저씨’
2017년 6월 출시된 ‘리니지M’은 엔씨소프트 뿐아니라 국내 모바일 게임 지형을 크게 바꿔놨다. 이유는 간단하다. ‘리니지 모바일’ 시리즈가 지금까지 수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며 이른바 ’대박’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실제 ‘리니지M’의 올 2월까지 누적매출은 43억 달러 수준에 달한다. 이외에도 2019년 11월 출시한 ‘리니지2M’은 18억달러, 2021년 11월 출시한 ‘리니지W’는 11억 달러 수준의 매출을 각각 올린 것으로 알려져 엔씨소프트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투자금과 인력은 제한적인 반면, 수익 극대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던 국내 게임사들은 잇따라 리니지의 성공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리니지와 유사한 BM을 탑재한 ‘DK모바일’, ‘R2모바일’, ‘이카루스이터널’, ‘아키에이지워’와 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PRG)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들 게임 대부분이 게임성 보다는 확률형 아이템 구매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이는 ‘ P2W’에 최적화 된 이른바 ‘현질’ 유도형 게임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게이머들은 이같은 유형의 게임을 ‘리니지 라이크’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른바 ‘린저씨(리니지를 하는 아저씨)’ 또한 과도한 현질 유도 정책에 반발하며 리니지 계정 탈퇴를 선언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최근 몇년간 게임 제작 시 스토리라인이나 콘텐츠 담당 부서보다는 BM을 담당하는 사업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 같은 ‘리니지 라이크’ 게임이 한국 모바일 게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리니지라이크’ 게임의 성공공식이 이제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올 1분기에 직전 동기 대비 3분의 1수준인 81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특히 아직 이용자 충성도가 높은 리니지M의 매출은 매분기 1300억원 내외로 안정적인 반면, 리니지2M의 올 1분기 매출은 730억원으로 전년 동기(1273억원) 대비 크게 하락했다. 올1분기 1225억원의 매출로 전년동기(3732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 리니지W또한 마찬가지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택진 대표는 2017년 직원들에게 ‘닌텐도 스위치’를 선물하며 ‘젤다의 전설’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이후 리니지 모바일 게임이 대박을 터뜨리며 리니지 IP에 기반한 현질유도 게임 출시라는 성공방정식을 되풀이 하는 모습”이라며 “엔씨소트 또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차별화된 게임성 및 BM을 탑재한 ‘트론앤리버티(TL)’ 출시 등으로 승부수를 띄우려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김남국 게이트’에 P2E 게임 합법화도 요원
여기에 김남국 의원의 게임사 코인 투자 이슈까지 게임업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몇몇 게임업체가 염원했던 P2E게임 합법화는 ‘김남국 사태’로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P2E 게임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게임 이용시 얻은 아이템 등을 가상화폐나 대체불가토큰(NFT) 형태로 보상해 주는 게임이다. 동남아에서 인기몰이 중인 위메이드의 P2E 게임 ‘미르4’가 대표적이다. 이용자들은 게임 속에서 사용되는 자원을 모아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로 교환한 뒤 원화 거래소 지갑에 이체하는 형태로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최저시급 및 화폐가치가 낮은 동남아에서 미르4와 같은 한국산 P2E 게임 인기가 높은 이유다. 반면 국내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 얻은 자원을 위믹스로 교환하는 것이 관련 법에 따라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국내 서비스 게임에는 이 같은 P2E 모델이 탑재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넷마블·컴투스·카카오게임즈·네오위즈 등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코인을 발행했으며, 가상화폐 거래소에 이들 코인을 상장하기도 했다. 반면 넥슨·NHN·엔씨소프트·크래프톤·펄어비스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코인을 발급하더라도 이들 코인을 게임 내에서만 사용하게 할뿐,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 내부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겠다던 블록체인 게임의 취지와 달리 게임사들이 발행한 코인들이 투기용으로 변질된데다 거래 투명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차례 제기된 만큼 게임업계 스스로 ‘코인 비즈니스’를 되돌아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