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전기요금이 ㎾h(킬로와트시)당 8원 올랐다. 본래 3월 말에 발표돼야 하는 2분기 전기요금 인상분이 한참 지난 5월 중순이 돼서야 결정됐다. 왜 이렇게 정부의 고민이 깊었을까. 이번 전기요금 인상을 불러온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그 충격이 과거 어느 때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B급·C급 태풍이었다면 이번에는 A급, 아니 초A급 태풍이 불어닥친 셈이다. 예전에 그럭저럭 넘어갔던 전기요금 인상 억제의 후폭풍도 이번에는 그 규모와 여파가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몇 년에 한번 ㎾h당 10원도 안 되는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그런데 지난해 ㎾h당 총 19.3원, 올 1분기 13.1원, 그리고 2분기 8원이 올랐다. 지난해 이후 지금까지 ㎾h당 총 40.4원이 인상돼 속도가 엄청나다.
올여름 냉방비를 내고 나면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 효과는 충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전기요금이 대폭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전력의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전은 지난해 32조 6034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발전 회사로부터 비싸게 사서 소비자에게는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h당 평균 155.5원에 전기를 구매하고 120.51원에 판매해 ㎾h당 35원가량 손해를 입었다. 발전원가가 오른 원인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다. 그중 전력도매가격(SMP·한전이 발전 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가격)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지난해 2020년 대비 7.7배, 2021년 대비 1.8배 올랐고 같은 기간 석탄 가격도 각각 5.9배, 2.6배 인상돼 연료 구입 비용이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한전의 적자를 키웠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조사에 따르면 원전을 LNG발전기로 대체하면서 SMP가 올라 지난해에만 12조 6834억 원의 전력 구입 비용이 추가됐으며 2018~2022년 총 25조 8000억 원의 전력 구입 비용이 증가했다.
한 해 30조 원이 넘는 적자는 우리나라 기업 역사상 처음 있는 숫자다. 보통 기업은 이 정도 적자를 기록하기 전에 망한다. 그리고 돈을 빌려준 은행도 망한다. 안 망하고 이렇게 버티는 것은 한전이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빚보증을 한다. 이 말은 한전의 적자가 다름 아닌 국민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안다. 공무원도, 정치인도, 임직원도, 노조도, 은행도 안다. 그래서 다 같이 모럴해저드에 빠진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공기업의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problem)이라고 부른다. 민간기업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이제 내년 총선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잖아도 지금까지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분이 3분기가 시작되는 7월 한여름에 ‘냉방비 폭탄’으로 터질 것이다. 그리고 4분기부터는 이미 총선 국면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어차피 모든 국민이 전기를 쓰는데 전기요금으로 돈을 내나 나중에 빚을 갚으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이처럼 어렵고 힘들 때는 전기요금을 덜 올리고 차라리 한전의 빚으로 쌓아두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면 소비자들은 전기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무역적자의 주원인은 에너지 수입의 증가였다. 수입액 증가분 1161억 달러의 68%가 에너지 수입 증가액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급증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올렸다면 소비자들도 전력 사용을 줄여 에너지 수입이 이렇게까지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도시가스요금을 인상했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날씨가 추워져 난방을 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은 ‘난방비 폭탄’의 충격을 제대로 느꼈다. 곧이어 인터넷과 많은 매체에서 난방비 절감 방안이 쏟아졌고 소비자들도 가스 소비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은 소비자가 물어야 한다. 이를 납세자가 낸다면 첫째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는 시장경제 원리에 위반되고, 둘째는 전기를 많이 써도 자신의 부담은 작으므로 전력을 과잉 소비하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고 필요 이상으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난해 한전은 ㎾h당 35원가량의 손해를 봤다. 지금까지 누적된 적자까지 해소하려면 전기요금을 ㎾h당 최소 50원 이상 올려야 한다. 실제 전기요금 인상 폭이 올려야 하는 정도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것은 전기요금 억제에 따른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전기요금 억제의 여파는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먼저 전력 시장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온다. 정부는 전기요금 억제로 한전의 적자가 심해지자 이를 다소 완화하려고 SMP에 상한제를 발동했다. 소매시장 가격 규제가 도매시장으로까지 파급된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동안 시행된 SMP 상한제로 민간에 전가된 손해는 약 2조 1000억 원이다. 한전의 100% 자회사인 발전 공기업도 한전 적자에 따른 정산조정계수 조정으로 인해 1조 8000억 원어치의 추가 부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전 적자는 전기요금을 올려 해결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물가 인상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공공요금’인 전기요금을 인상할 때는 총괄 원가와 함께 경제 상황의 변화 등 종합적인 여건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기요금은 제대로 인상되지 않고 한전의 적자와 채무로 누적돼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필요 이상의 전력 과소비를 일으켜 에너지 수입액을 급증시키고 무역적자와 원화 가치 하락을 불러온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공기업 부채와 무역적자의 급증 등 연쇄적 부작용으로 번지는 것이다.
금융시장도 불안해지고 있다. 한전은 하루에 1000억 원 정도의 회사채를 끌어 쓰고 있다. 지금까지 한전이 끌어다 쓴 돈인 누적 부채는 무려 193조 원이다. 그럼에도 한전은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높아 회사채 물량을 싹쓸이한다. 그 결과 다른 민간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는 구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바람에 신용도가 어중간한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보다 이자가 높은 기업어음(CP) 시장을 기웃거려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우리는 전기요금 인상 때 정치적으로 많은 눈치를 본다. 2011년 9월 15일 발생한 수도권의 정전도 그 이전에 누적돼온 전기요금 억제의 후유증이 터져나온 것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국제유가의 급등은 천연가스와 석탄의 가격 상승을 가져왔지만 정부는 2011년까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일곱 번의 전국적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력 수요는 급증했고 공급은 모자라 결국 수도권 순환 정전 사태가 터졌다.
이런 까닭에 선진국에서는 전기요금을 독립 규제 기관이 정치적 눈치를 볼 것 없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전기요금의 독립적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요금 인상 압력은 요금 인상으로 푸는 것이 순리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수록 부정적 연쇄효과의 부작용은 점점 더 커진다.
조성봉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자원경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와 에너지스쿨 책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