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치러진 그리스 총선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주주의당이 40.8%를 득표해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두 배 이상 표차로 따돌린 것이다. 포퓰리스트인 치프라스가 재집권하면 또다시 경제위기에 휘말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유권자들이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불신을 표로 심판한 것이다.
반면 미초타키스 총리는 구조 개혁에 치중하는 정공법을 펼쳤다. 그는 무상 의료와 소득대체율 90%의 연금 제도를 뜯어고치고 공공 부문의 임금을 대폭 삭감했다. 최저임금도 구제금융 직전인 2009년에 비해 28%나 낮췄다. 혹독한 체질 개선에 힘입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1%를 기록했다. 그리스가 ‘유럽의 문제아’에서 벗어나 10년여 만의 경제 부흥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우리도 과거와 달리 포퓰리즘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 20~30대에서 무당층이 급증한 것은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포퓰리즘 경쟁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최근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 가운데 무당층 비율은 46%에 달했다. 30대 무당층 비율도 39%로 평균(29%)에 비해 10%포인트를 웃돌았다. 총선에서 환심을 사겠다며 미래 세대에게 부채 폭탄을 안기려는 정당을 누가 지지하겠는가. 일찍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해서도 반대 비율이 찬성을 훨씬 앞서기도 했다. 무조건 돈을 나눠주겠다는 야당의 기본소득 시리즈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에 주력하되 일자리 창출이나 성장 동력 확충 등 꼭 필요한 곳에 재정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포퓰리즘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 세금으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선심 정책의 위험성에 대한 학습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이 가까워지면 정치권의 퍼주기 경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확대 지급하고 국민연금과 연계한 감액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연금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부터 2028년까지 42조 6000억 원, 연평균 8조 5000억 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회예산정책처의 추산이다. 이제는 정치권도 무분별한 선심 정책이 득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다.
그리스와 함께 ‘유럽의 돼지’로 지목받던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재정위기국가)’의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선심성 복지와 부채 남발로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은 PIGS 국민들은 최근 ‘사탕발림 복지’를 내세우는 좌파 정권을 잇따라 심판하고 있다. 스페인 지방선거에서는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노인 무료 영화 관람 등을 내세운 사회노동당이 우파 연합에 참패했다. 선심성 정책은 국민에게 고통만 안길 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튀르키예의 행보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튀르키예는 대선 직후 리라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포퓰리즘의 신’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투표를 앞두고 공무원 임금 45% 인상, 가정용 천연가스 무료 제공, 조기 연금 수령 등 등 인기 영합 정책을 쏟아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 투표장에서 “우리 대통령”이라고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200리라(약 1만 3000원)짜리 지폐를 나눠주는 장면도 포착됐다. 그는 “나의 당선으로 튀르키예는 세계 질서에서 특별한 권력과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문제는 취약한 경제가 그의 호언장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는 85%에 달하는 고물가와 경제난을 초래한 저금리 정책을 굽히지 않아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외환보유액 급감에 따른 국가 채무불이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경제 원리를 철저히 무시한 정치 지도자의 아집이 초래한 결과다. 튀르키예의 미래에 세계의 우려 섞인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