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금과옥조처럼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다. 개개인이 각자의 개인정보에 대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수집하거나 이용하도록 할 지에 대해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라고 간략히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를 개인정보 보호의 근간을 이루는 대원칙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자기결정권이 어떻게 행사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면 이 개념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지 애매하다. 특히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최근의 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개개인이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통제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한다.
AI의 작동은 데이터의 군집이나 분류에서 출발한다. 즉 주어진 데이터의 특징을 파악해 유형화하는 것이 AI 기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범죄 수사의 맥락에서 종종 언급되는 프로파일링도 이와 유사하게 유형화를 통해 작동한다. 프로파일링은 그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를 수집한 뒤 이로부터 중요한 특징을 추출하고 유형화해 일종의 예측모형을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AI의 기본적인 작동 과정과도 통하는 것이다. 사실 프로파일링은 범죄 수사는 물론 그 이외의 매우 다양한 데이터 분석의 맥락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어 몇 개의 동영상을 클릭한 것으로부터 후속 동영상을 추천한다든가 인터넷 공간에서 맞춤형 콘텐츠나 맞춤형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등 개인화된 결과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모두 넓은 의미의 프로파일링 기능을 포함한다. 이를 개인정보 프로파일링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화된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개개인의 명시적인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을 분류하는 과정을 포함하기도 한다. 개인이 본인의 개인정보를 직접 제공하지 않더라도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에 관해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 개별 정보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개인의 단편적 생활 습성에 관한 정보를 모아 이로부터 특정 질병의 가능성에 관해 판단하거나 이념적 성향을 평가하다보면 민감한 정보가 노출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판단이 당사자의 민감정보 제공 여부와 무관하게 또는 당사자의 선호와 상관없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데 있다. 판단이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개개인이 자신에 관한 정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선언한 것인데, AI를 활용한 프로파일링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프로파일링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프로파일링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 유용하게 이용되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제공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사회적 도입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기존의 법원칙에 대한 반복적인 재검토와 재해석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칙의 선언은 공허한 것에 머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기술의 개발 또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