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 18조 원이던 정부의 국내 배전망 설비투자 전망치가 31조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늘어나는 송배전 비용이 전기요금 인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이 4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2022~2036년)’을 토대로 한 신재생에너지 연계 배전 설비 투자 예상 소요액은 7조 5000억 원이다. 이는 2년 전 수립했던 9차 계획(2020~2034년)의 예상치(5조 5000억 원)보다 2조 원(36%)이나 늘어난 액수다. 신재생에너지가 2년 전 전망에 비해 1.2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결과다.
아울러 한전은 배전 선로 신설 등 전력 공급을 위해 2036년까지 23조 5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9차 계획보다 88%나 급증한 규모다. 배전 선로 신설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모두 따지면 2036년까지 배전 투자비로만 총 31조 원이 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전력 업계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가파르게 늘어나는 신재생에너지가 송배전 투자비의 추가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21년 24.9GW에서 2036년 108.3GW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34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96.9GW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망보다 24.6%나 높다.
더욱이 태양광·풍력의 경우 다른 발전원과 달리 ‘백업용 배전망’이 필수적이다. 해가 떠 있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제때 전력을 공급하지 못해 다른 발전 시설과 소비자를 잇는 전력망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송전망보다 배전망 투자 증가 폭이 가파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전은 해외 배전망 요금 단가가 송전 요금보다 높게 나타난 이유에 대해 “신재생에너지 등 분산 전원 확대와 지중화 설비 투자 등으로 송전망보다 투자비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늘어나는 배전망 투자비가 향후 한전의 실적 악화와 전기요금 인상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원가에도 못 미치는 역마진 요금 구조 탓에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 입장에서는 추가 설비 투자 비용이 늘어나면 전기요금을 인상하거나 실적 악화를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 한 해에만 33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조 원이 넘는 적자를 떠안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한전은 지난달 자구안을 통해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전력 인프라 건설을 미루겠다고 발표했지만 2036년까지 전국 송전 선로 확대 방침은 유지되는 만큼 배전 투자 비용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우리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선진국들은 전력망 투자 비용 가운데 송배전 설비 확충에 투입하는 비중도 클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우리나라도 전력계통 안정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되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