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CES 혁신벤처도 "아이디어 도용"…데스밸리 못넘고 고사 위기

■위협 받는 스타트업 생태계…與, 기술도용 처벌 강화

대기업 경험·자금력 더해 '상용화 날개' 기대했지만

영업비밀 침해 등 분쟁 땐 입증 어려워 사실상 완패

정부, 범부처 통합신고센터·조정중재원 설립 추진





여당인 국민의힘이 현재 최대 3배인 징벌적 손해배상 기준을 최대 5배까지 대폭 강화하려는 것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 기술 도용 및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산업기술보호법과 부당경쟁방지법을 전면 개정해 스타트업의 유망 기술을 보호하고 이들이 창업 초기 고비를 넘겨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스타트업 기술 도용 사례가 잇따르며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복되는 대기업 VS 스타트업 기술 도용 논란=올 4월 스타트업 대표들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 기업은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 뷰티테크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 축산 플랫폼 기업 키우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닥터다이어리, 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 등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산업 전반의 아이디어 탈취가 스타트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일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며 “아이디어·성과물 침해, 데이터 부정 사용 등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현행법은 피해 기업이 증거 수집 및 피해액 입증을 직접 해야 하는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며 “정부 기관 등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이들 기업은 대기업과 분쟁을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2·2023에서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은 프링커코리아는 LG생활건강(051900)이 자사의 타투(tattoo) 디바이스 ‘프링커’의 콘셉트와 기술을 도용했다는 입장이다. LG생활건강은 핵심 기술이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 사는 중소벤처기업부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 조정을 진행 중이다.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인 동시에 기술 도용 위험도=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의 협업은 거부하기 어려운 좋은 기회다. 특히 금리 인상 기조와 맞물려 자금시장이 좋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풍부한 마케팅 경험,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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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기회는 기술 유용과 영업비밀 도용이라는 부메랑이 돼서 날아오기도 한다. 수차례 협업을 위한 미팅을 진행하던 대기업이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하면 충분히 유사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다음 등을 돌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도용 분쟁에 휘말린 스타트업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법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대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당해낼 길이 없어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손쓸 도리가 없다. 명확한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스타트업이 처한 상황을 악화시킨다. 투자 유치를 통해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상용화시켜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지만 이같은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기도 어려워진다. 기술을 도용당했다는 점에서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트업은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고 고사(枯死)할 위기에 처한다.

스타트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업을 키워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분쟁에 휘말리면 기업 운영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과의 싸움이 어려운 만큼 많은 기업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당 ‘스타트업 기술 탈취 방지 TF’ 구성…범부처 협의체도=이번 대책은 여당은 물론 범부처 차원에서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도용을 방치할 수 없다며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이 기술 도용 및 영업비밀 침해 사례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대폭 강화하고 그동안 분산돼 있던 정부 지원책을 범부처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업계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 도용을 당했을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범부처 해결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중기부·특허청·경찰청 등이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공조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개정 외에도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범부처 통합상담신고센터 구축, 중소기업기술보호조정중재원 설립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기술 도용 사건 조사와 시정 권고, 검경 수사 의뢰까지 공조 프로세스도 구축한다. 아울러 피해 스타트업이 고사하지 않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기술보증기금에 기술보호회복센터를 설립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병준 기자·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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