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1984년에 개봉됐던 영화 터미네이터를 최근 주문형비디오(VOD)로 봤다던 20대 젊은 후배가 한 말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1편이 개봉한 지 벌써 40여 년이라니. 후배의 말을 듣고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했던 미래 세계의 살인 병기 인공지능(AI) 로봇 T-800의 모습을 흉내 내며 그의 유명한 대사 “아일 비 백(I’ll be back)”을 따라했던 친구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AI 로봇이 인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 무시무시한 일이 현실화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이달 초 영국 가디언은 미군의 최근 가상훈련에서 AI 드론이 지상의 인간 조종자를 자신의 방해자로 판단하고 폭격해 살해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파장이 거세지자 가상훈련이 아니라 가설에 근거한 외부 실험일 뿐이었다며 봉합하려 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터미네이터에 등장한 AI 시스템 ‘스카이넷’은 자신의 발전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스카이넷을 멈추려고 하자 되레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했다. AI 스카이넷이 먼 미래가 아닌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AI를 둘러싼 여러 뉴스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AI의 위험성에 대한 석학들의 경고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 근처에서 난 것처럼 꾸민 폭발 사고 사진은 조잡한 AI 기술의 결과였지만 미국 증시를 한순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부작용과 문제점이 쏟아지자 AI 석학인 요슈아 벤지오 교수는 “군대나 테러리스트가 AI 시스템에 나쁜 일을 시킨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며 AI의 효용성보다는 안전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벤지오뿐만이 아니다. 20세기 외교가의 살아 있는 역사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 수년 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 도화선은 AI 무기가 될 것이라며 잇따른 경고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심지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 의회에 출석해 “AI를 통제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감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챗GPT의 창시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AI 대부들이 경고 메시지의 강도를 높이고는 있지만 섣부른 통제와 규제는 되레 AI 시장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초거대 기업과 초강대국들에 유리한 환경만 조성해줄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AI의 발전으로 이미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신산업의 싹이 트고 있는데 규제는 소수의 기득권자가 시장을 독식할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 뿐이라는 비판이다.
AI와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원자폭탄의 태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서둘러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주문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핵무기가 전쟁 억지용이 아니라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인생 최대 실수라고 자책했다.
핵무기의 이론적 토대인 핵분열 연쇄반응이라는 과학적 발견은 원자력발전이라는 놀라운 에너지원의 토대이기도 하다. 원자력발전과 원자폭탄은 모두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켜 생겨난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원리가 같다.
21세기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올 AI는 양날의 칼이다. 부정적인 영향만을 우려해 지나친 규제에 매달리면 되레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아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염려한 대로 히틀러의 손에 먼저 놓인 핵폭탄 버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적절한 통제와 관리에 나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으로 인류의 발전에 활용해 평화로운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AI 시대를 현명하게 맞이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