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프로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경기장에 우리나라 기업의 광고가 걸려있는 모습 본 적 있으시죠? 낯익은 이름이 반가우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저렇게까지 광고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타이어 회사들이 유명 스포츠 리그나 구단에 후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축구부터 농구, 야구, 심지어 하키팀까지 후원하고 있습니다.
손흥민 ‘레전드 골’ 배경에 등장…홍보 대박 난 금호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 손 선수의 골 장면에는 ‘금호타이어(073240)’ 로고가 종종 등장합니다. 바로 금호타이어가 2016년부터 토트넘 구단을 공식 후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 선수가 토트넘에 합류한 이듬해부터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협력 관계를 이용해 금호타이어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홈 경기에 발광다이오드(LED)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토트넘 구단도 타이어 안전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에 선수들을 참여시키며 금호타이어와 공동 캠페인도 제작 중인데요.
손 선수의 선전 덕분에 기대 이상의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 특히 손 선수는 2019~2020 시즌 번리와의 경기에서 73미터를 질주해 골을 터뜨리며 ‘푸스카스’ 상을 받았는데요. 손 선수가 그라운드를 달리던 시간에 마침 금호타이어의 광고가 중계화면에 노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금호타이어는 토트넘뿐 아니라 독일의 명문 축구 구단 바이엘 04 레버쿠젠도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체코의 유명 축구 구단 FK 믈라다볼레슬라프의 후원사로도 활동했습니다.
MLB 후원하는 한국…넥센은 맨시티 ‘슬리브 파트너’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는 훨씬 더 다양한 리그와 종목을 후원 중입니다. 먼저 유럽프로리그 상위팀 간 축구대회인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UEFA)’를 12년 동안이나 후원하고 있고요.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 세리에A ‘S.S.C. 나폴리’,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구단과도 후원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도 후원하는데요. MLB 경기장에서 노출 빈도가 높은 홈플레이트 광고를 활용해 브랜드를 알리고 경기장 내 이벤트도 병행하며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넥센타이어(002350) 역시 스포츠 마케팅 경쟁에 ‘진심’입니다. 영국 ‘맨체스터 시티’, 독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이탈리아 ‘AC 밀란’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특히 2017년에 프리미어 리그 최초로 맨체스터 시티의 공식 ‘슬리브 파트너’가 되기도 했습니다. 슬리브 파트너는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의 소매 부분에 회사 로고를 넣는 수준의 협력 단계를 말합니다. 이 뿐 아니라 넥센타이어는 미국의 프로하키팀 ‘시카고 블랙호크스’도 후원 중입니다.
유니폼에 로고 넣으면 800억…인지도 높이기 ‘사활’
업계의 스포츠 마케팅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후원하는 리그와 구단이 유명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선수들의 유니폼 소매에 로고를 넣으려면 400억 원, 가슴 부분에 큼직한 로고를 넣을 경우 800억 원에 달하는 후원비를 지원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호타이어는 박지성 선수가 현역일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년 간 후원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측에 무려 연간 35억 원, 총 140억 원을 후원한 바 있습니다.
타이어 업계가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스포츠 마케팅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인지도를 높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내 타이어 3사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세계 2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타이어 시장은 미쉐린(프랑스), 브릿지스톤(일본), 굿이어(미국), 콘티넨탈(독일)이 전체 점유율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이어라는 제품의 특성 상 시장 점유율을 단시간에 가져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사 제품과 비교해 가격과 성능,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차별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겠죠. 결국 존재감을 조금씩 늘려가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브랜드를 노출하는 스포츠 마케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입니다. 축구나 야구 같은 대형 이벤트 자리가 아니고선 타이어 제품의 인지도를 높일 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가 들려준 말입니다.
“타이어 3사는 생산량의 70% 정도를 수출하고 있을 정도로 해외 시장이 중요합니다. 사내에서도 다수의 잠재 고객에 스포츠 경기를 통해 브랜드 이름을 알리는 방법을 가격 대비 효과가 좋은 마케팅 기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완성차용 타이어 계약이 주 목적…성과로 이어져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완성차 제조사에 직접 납품하는 물량을 따내기 위해서입니다.
타이어는 크게 완성차용 타이어(OE)와 소매용 타이어(RE)로 나뉩니다. OE는 완성차 제조사가 신차를 생산할 때 기본으로 장착하는 타이어입니다. 완성차 제조사가 타이어 업체를 지정해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식으로 물량을 공급받습니다. RE는 수명이 다한 타이어를 교체할 때 운전자들이 일선 대리점에서 구매하는 제품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OE가 40%, RE가 60% 정도라고 하는데요. 중요한 건 OE 계약이 RE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기본 장착된 타이어와 동일한 제품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타이어 업계는 OE 시장 공략을 위해 애씁니다.
해외 시장에서 OE 계약을 따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제품과 가격 경쟁력을 입증해야 하고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타이어 업계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스포츠 마케팅입니다. 특히 OE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완성차 제조사들이 타이어 업체가 얼마나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갖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 활용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타이어 업계가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는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체코는 주요 자동차 생산국입니다.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가 자리한 국가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실행해 브랜드 홍보 효과를 노리는 셈이죠.
그 덕분일까요. 국내 타이어 3사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와 연이어 OE 계약을 따내고 있습니다. 금호타이어는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스코다 등에 한국타이어는 포르쉐, BMW, 아우디 등에 신차용 타이어를 납품 중입니다. 넥센타이어도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포르쉐, 아우디 등과 OE 공급 계약을 맺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해외 스포츠 경기 장면에서 국내 기업의 이름을 발견하는 반가움 이면에는 업계의 치열한 생존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 업계가 어떤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나갈지 지켜볼 만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