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으로 떠난 쌍둥이 로버…기대수명 3개월
화성을 개척하기 위해 그 동안 인류는 많은 탐사선(로버)을 보냈습니다. 현재도 화성에는 지구에서 보낸 로버가 활동하고 있죠.
화성에 간 여러 로버들 가운데 화성탐사의 새로운 장을 연 로버가 있어 현재도 과학자들과 우주 마니아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입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만들어 보낸 이 쌍둥이 로버는 화성의 새로운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또 화성의 환경을 잘 분석해 알려줬습니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화성에 대한 정보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켜줬습니다.
나사는 2000년부터 화성로버 개발에 착수해 2003년 두 대의 탐사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쌍둥이 로버에게는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졌습니다.
당시 나사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로버 이름 공모에 나섰고, 고아원에 살던 9살 소녀 소피 콜린스의 편지 내용에서 이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 소녀는 한 가정에 입양이 됐는데 편지에는 ‘내가 가끔 올려다 본 밤하늘은 춥고 어두웠지만 어느날 가족이 생긴 후부터 바라본 밤하늘은 달라보였습니다. 이런 밤하늘은 나에게 새로운 마음(spirit)과 기회(opportunity)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9살 소녀가 지어준 이름을 얻게 된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이제 화성을 향해 출발합니다. 2003년 6월 10일 스피릿이 먼저 지구를 떠났고, 다음달인 7월 7일 오퍼튜니티가 발사됐습니다. 그리고 7개월 후인 2004년 1월 4일 스피릿이 먼저 화성이 착륙하고 3주 후 오퍼튜니티가 화성땅을 밟았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화성 도착 후 태양전지판을 펴 에너지를 충전하고 곧 바로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화성을 돌아다니게 될 쌍둥이 로버의 예상 수명은 3개월(90일)이었습니다. 나사는 스피릿·오퍼튜니티가 낮엔 뜨겁고 밤엔 추운 기온과 모래폭풍, 모래언덕 등 극한 화성의 환경을 잘 이기고 3개월을 버텨주기를 바랐습니다.
화성착륙 한달도 안 돼 돌발상황 맞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그런데 스피릿이 화성에 착륙한지 2주 가량 됐을 때인 2004년 1월 21일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스피릿의 메모리에서 에러(오류)가 발생해 지구와 통신이 두절됐습니다.
이런 돌발상황에서 나사 측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스피릿이 다시 신호를 보내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스피릿으로부터 신호는 오지 않았고, 큰 기대를 걸었던 로버가 기대수명을 못 채우고 임무를 마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통신 두절 8일만에 스피릿이 지구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허탈감에 빠져있던 나사 연구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환호했죠. 통신이 두절됐던 8일 동안의 로버 행적을 살펴보니 죽음의 위기에 있던 스피릿은 살기 위해 스스로 66번을 재부팅해 메모리 에러를 이겨냈던 것입니다.
다시 화성탐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스피릿은 미리 프로그램 된 데로 화성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토양과 대기 등을 분석해 그 자료들을 지구로 전송했습니다.
스피릿이 겨우 살아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오퍼튜니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로버의 바퀴가 모래언덕에 빠져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나사에는 또 비상이 걸린 거죠.
특히 오퍼튜니티가 빠진 모래언덕은 태양빛이 닿지 않는 곳이라 충전해 놓은 전력이 모두 소진되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퍼튜니티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가 않아 단숨에 모래언덕을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태양열로 충전한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빨리 모래언덕을 나와야 하지만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먼 지구에서 기다리는 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오퍼튜니티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바퀴를 움직여 35일만에 모래언덕을 탈출했습니다. 오퍼튜니티는 로봇이지만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모래와 사투를 벌인 것입니다.
메모리 에러을 극복한 스피릿과 모래언덕에서 탈출한 오퍼튜니티는 본격적인 탐사활동을 나섰습니다.
‘종료기능’ 없어 일부 기능 고장에도 탐사는 계속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보여준 놀라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기대수명인 3개월을 훌쩍 넘겼음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는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제작할 때 ‘종료’ 기능을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끝’의 개념을 모르는 이 로버들은 3개월이 지나 일부 부품이 마모되고 일부 기능이 고장이 나도 계속 탐사를 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그러다 2009년 5월 스피릿의 바퀴가 모래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예상수명을 훨씬 넘긴 스피릿의 각 기관은 제대로 동작할 수 없었기에 모래를 빠져나오지 못했죠. 결국 나사는 2010년 1월 26일 스피릿의 ‘임무종료’를 선언했습니다. 화성에 착륙한지 6년만에 탐사를 멈춘 것입니다. 예상수명 3개월의 20여배에 달하는 기간이었죠.
스피릿은 모래언덕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였지만 에너지가 완전히 소실될 때 까지 지구로 사진을 전송하는 등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피릿의 활동은 멈췄지만 오퍼튜니티는 계속 생존하며 탐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오퍼튜니티 역시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지만 이 로버도 종료 기능이 없어 계속 화성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탐사를 했죠.
그리고 2018년 6월 엄청난 모래폭풍을 만난 오퍼튜니티는 지구에 신호를 보내지 못했고, 통신을 기다리던 나사는 마침내 2019년 2월 13일 오퍼튜니티의 임무가 종료됐음을 발표했습니다. 오퍼튜니티의 마지막 교신 내용은 ‘My battery is low and it's getting dark(배터리가 부족함. 그리고 어두워지고 있음)’이었다고 합니다.
화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안겨다 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화성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 로버들은 화성의 암석층을 분석하고 또 선명한 화성 지표, 화성에서 바라본 우주의 모습을 촬영했으며 오랜 옛날 화성에 물이 흘렀음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을 찾아 지구로 전송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과 성과를 보여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지구로 보낸 자료는 앞으로 수십년을 연구해야 하는 방대한 양이라고 합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사람이 만든 로봇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긴 기간 동안 화성을 탐사하면서 인류에게 큰 선물을 하고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