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기업 감사인을 강제로 정해주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현행 유지하기로 했다. 기업은 감사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커졌다며 완화를 요청했지만 당국은 ‘제도 도입 전후의 회계 투명성을 비교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자산 2조 원 미만 상장사의 내부회계 감사 도입을 5년 유예하는 등 방식으로 기업의 회계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택했다.
11일 금융위원회는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발표하고 ‘6+3’(자유 선임 기간 6년·지정선임 기간 3년) 방식의 현행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금융위·금감원·기업·회계·학계 관계자 총 10명으로 구성된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을 꾸리고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6차례 회의와 올해 2월 10일 회계학회 공청회, 지난 4월 6일 금융발전심의회 자본시장분과 회의 논의를 거쳐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고 설명했다.
2019년 말 새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에 따라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계기가 돼 2018년 11월 시행된 개정 외부감사법(신외감법)에 따라 도입했다. 제도 도입 후 회계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감사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었다는 기업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다. 일부 기업은 감사인의 과도한 자료 요구 등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당국은 기업의 회계 부담 증가는 이해하지만 제도 도입 효과를 검증할 데이터가 부재해 유지를 택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2020년 첫 도입돼 220개사가 2022년까지 3년 동안 당국이 지정한 감사인의 감사를 받고 올해부터 자유 선임으로 풀려놨다”며 “제도 도입 전후의 회계 투명성 제고 등 효과를 보려면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가 나오는 내년 3월이 돼야한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내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개선을 위한 검토에 돌입할 방침이지만 전체 상장사 2500개 중 220개로 표본이 작아 이듬해인 2025년 추가로 220개사의 표본이 더해지면 제도 개선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감사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또 기업 부담만 높이고 회계 투명성 향상 효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방법도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7년 상장사 한 곳당 평균 감사보수는 2017년만 해도 1억 2132만 원이었지만 2022년에는 2억 7561만 원으로 5년 사이 약 2.3배 급증했다.
당국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당장 개선할 수 없는 만큼 일부 회계 제도 유연화로 기업 부담을 완화시켜주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자산 2조 원 미만 연결 내부회계관리 외부감사 도입 시기를 내년에서 5년 유예해 2029년으로 늦추기로 했다. 감사인 지정 비율도 적정화하기로 했다. 감사인 지정 비율은 신외감법 도입 후 꾸준히 늘었다. 2018년만 해도 6.4%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52.6%까지 급증했다. 구체적으로 현행 27개인 감사인 직권지정 사유 중 16개 사유를 폐지하거나 완화해 지정 비율을 낮춘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 표준감사 시간이 기존 강행 규범으로 오인될 수 있던 점을 고려해 관련 조항을 삭제해 업계 협의에 맡길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요 회계제도 보완 방안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하위 규정 개정을 통해 추진 가능한 사항은 연내 마무리하겠다”며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도 조속한 입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