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중 사이에 ‘해빙’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양국은 서로를 향한 견제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중국이 쿠바에 미국 도청용 기지를 건설했다는 주장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중국은 각종 국제 행사를 개최하며 미국에 맞서는 형국이다. 양국 간 팽팽한 힘겨루기는 블링컨 장관이 방중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직접 만나고 어떤 의제를 다루느냐에 따라 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e메일 설명을 통해 중국이 최소 2019년부터 쿠바에 도청 기지를 두고 정보 수집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이 대서양과 라틴아메리카·중동·중앙아시아·아프리카·인도태평양 등에서 글로벌 군사·정보 자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보고받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8일 WSJ는 중국이 쿠바에 도청 기지를 세우고 그 대가로 현금이 부족한 쿠바에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미국 플로리다주와 약 160㎞ 떨어진 쿠바에서 미국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국 간 긴장감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블링컨 장관이 이달 18일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며 양국 간 갈등 완화가 기대됐던 시점이어서 우려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올 2월에도 블링컨 장관은 방중을 계획했으나 당시 미 본토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풍선이 포착된 직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도청 기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4개월 만에 이뤄질 예정인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재차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도청 기지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9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루머와 비방을 퍼뜨리는 것은 미국의 일반적인 전술”이라고 일축했다.
현재까지 블링컨 장관의 방중에 대해 미중 양국의 공식 확인은 없지만 그의 방문이 성사된다면 카운터파트인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및 중국 외교 라인 1인자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블링컨 장관이 시 주석을 예방할지 여부다. 이 경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가 시 주석에게 전달되고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초청, 나아가 미중 양국 정상회담에 대한 의사 교환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별개로 중국은 미국과의 긴장감을 키울 수 있는 일련의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이날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16~17일 중국 푸젠성에서 중국과 대만 대표들이 참석해 양안(중국과 대만) 발전과 교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제15차 해협 포럼이 열린다.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이 포럼에 샤리옌 부주석이 인솔하는 대표단을 파견한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집권 민진당과 달리 야당인 국민당은 중국 당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탈공조화) 압박에 맞서 중국은 공급망을 주제로 한 국제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올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베이징에서 ‘중국 국제 공급망 엑스포’가 열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