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복’이라는 만수르의 꿈이 이뤄졌다. 2008년 구단 인수 뒤 15년 만의 일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왕족으로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셰이크 만수르(53)가 구단주로 있는 맨체스터 시티는 11일(한국 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022~2023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인터밀란을 1 대 0으로 이겼다. 후반 23분 로드리의 오른발 슈팅이 결승 득점이 됐다.
1880년 창단 후 첫 유럽 정복이다. 앞서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잉글랜드축구협회 FA컵에서 우승한 맨시티는 창단 첫 유럽 트레블(3관왕)까지 해냈다. 유럽 트레블은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셀틱, 아약스,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터밀란에 맨시티까지 8개 팀만 작성한 대기록이다.
맨시티는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이후 올 시즌까지 일곱 차례나 EPL 우승을 했지만 챔스는 못 넘을 벽 같았다. 2021년 구단 사상 처음으로 챔스 결승에 올랐으나 첼시에 0 대 1로 졌다. 이번 시즌에는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단 1패도 없는 완벽한 경기력으로 벽을 넘었다.
2016년 맨시티 감독으로 온 페프 과르디올라는 7년 만에 빅 이어(챔스 트로피)를 품었고 올 시즌 입단한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은 EPL 득점왕(36골)에 이어 챔스 득점왕(12골)까지 거머쥐었다. 한 시즌에 EPL과 챔스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것은 역대 네 번째. 2008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당시 맨유) 이후 15년 만이다. 홀란은 “며칠이 지나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는 게 실감나면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분명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억 6500만 파운드(약 4300억 원)에 맨시티를 인수한 만수르가 15년 간 선수 영입에 쓴 돈만 거의 20억 파운드(약 3조 2500억 원)다. 올 시즌도 홀란을 5100만 파운드(약 829억 원)에, 훌리안 알바레스를 1800만 파운드(약 292억 원)에 영입하며 유럽 정복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7경기 4골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던 알바레스는 대표팀에서 월드컵 우승을, 소속팀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며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관왕에 오르는 기록을 썼다. 공식 경기 17골로 홀란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에도 올랐다.
만수르는 그동안 현장보다는 선수단 뒤에서 움직였다. 공식 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리버풀전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전용 제트기로 이스탄불을 찾은 만수르는 팀 상징인 하늘색으로 장식된 응원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관중석에 앉았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 곁에서 역사적인 순간과 마주했다.
만수르의 성공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스포츠계 장악이 한창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 눈길을 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지원하는 LIV 골프는 최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통합’을 발표하면서 어려울 것이라던 골프에서까지 주도권을 잡았다. 프로축구 사우디 리그에는 이미 호날두가 뛰고 있고 또 다른 슈퍼스타인 카림 벤제마까지 최근 합류했다. 맨시티의 유럽 정복에 새삼 자극 받은 사우디와 카타르 등 ‘중동 파워’가 한층 더 공격적인 투자로 스포츠판을 뒤흔들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