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금융그룹이 특정 기술을 깊게 파고드는 ‘딥테크(Deep Tech)’ 기업 투자에 시동을 걸어 관심을 모은다. 과거 실험실에 머물던 우주·인공지능(AI)반도체·로보틱스기술이 빠른 발전으로 시장성을 갖추자 차세대 먹거리로 선점하려는 것이다. 투자 고수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과감하고 빠른 행보로 미래 혁신 기업 투자의 보폭을 넓히면서 금융투자 업계의 새 트렌드를 형성할지 주목된다.
1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006800)은 이달 29일 조성될 ‘미래에셋글로벌딥테크투자조합1호’에 650억 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총 800억 원 규모로 꾸려질 이 펀드에는 운용사(GP)인 미래에셋캐피탈을 비롯해 외부 투자자들도 150억 원을 투자한다. 미래에셋캐피탈 측은 펀드 결성 이후 증액을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투자 기간은 5년이며 존속 기간은 10년이다.
1호 글로벌딥테크펀드는 과학 분야 연구개발(R&A)을 기반으로 첨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는 스타트업들에 투자할 계획이다. 산업별로는 ‘우주·AI반도체·2차전지·로보틱스’를 겨냥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셋그룹의 한 관계자는 “독보적 기술력을 갖춰 일반적인 서비스 스타트업과는 달리 모방이 어려운 스타트업을 우선해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그룹이 딥테크 투자를 결정한 것은 인터넷 플랫폼을 이을 벤처 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딥테크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2016년 150억 달러에서 2025년 14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딥테크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며 “현 추세가 계속돼 새로운 생태계가 마련된다면 글로벌 딥테크 투자액이 2025년 2000억 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딥테크 회사들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탄탄한 기술장벽을 세워 생존 경쟁력이 좋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지난 10년이 플랫폼 시대였다면 향후 10년은 딥테크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래에셋그룹은 최근 혁신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한층 확대하고 있다. 성장성이 있는 벤처기업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과감히 투자하라는 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그룹은 2016년부터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벤처투자를 중심으로 펀드를 모으거나 인수금융 형태로 일부 자본을 태우는 방법에서 벗어나 벤처기업에 자기자본을 투자하며 과감한 베팅을 모색하고 있다.
창업 3년 차인 AI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미래에셋캐피탈과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지난해 리벨리온의 620억 원 규모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리벨리온은 금융기관들의 초단타매매(HFT)를 위한 주문형반도체(ASIC)를 설계한다. 현재 JP모건 등 뉴욕 월가 금융회사들과 협업하며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딥테크 기업 지원이 늘면서 시중 자금도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매년 3조 5000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딥테크 유니콘 기업 10개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기술창업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의 경우 투자 포트폴리오 중 딥테크 스타트업의 비중이 65.4%를 넘겼다. 퓨처플레이가 투자한 딥테크 기업의 생존율은 91.6%에 달하고 전체 포트폴리오사의 기업가치는 20.5배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