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을 개인이 부담한다면 환자 선택에 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으로 약값을 충당해야 한다면 어떤가요. 개인이 병원에 좀 더 자주 오고 더 많은 환자를 살리는 게 맞지 않습니까.”
두 달에 한번 맞는 주사제가 있는데 2주 간격으로 맞는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이렇게 답했다. 솔리리스는 인구 100만 명당 15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인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다. PNH 환자들은 유전자 이상으로 적혈구가 깨지는 용혈현상이 반복되다 심장, 폐, 신장이 망가져 5년 이내 35~40%가 사망한다. 그런데 2007년 개발된 솔리리스를 2주마다 맞으면 생존율이 정상인 수준으로 올라간다.
문제는 한해 4억~5억 원에 달하는 약값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부터 솔리리스의 급여기준이 신설되며 본인 부담금이 연간 최대 400만 원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예산 문제로 PNH 환자 500명 중 증상이 심한 100명 가량만 혜택을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임상을 진행하는 동안은 시험약을 투여받는 길로 열렸지만 개발 완료와 함께 이마저 사라졌다.
솔리리스의 원개발사인 알렉시온(현 아스트라제네카)은 특허만료에 대비해 일찌감치 반감기를 대폭 늘린 후속약물 ‘울토미리스’를 개발하고 세대교체에 힘을 쏟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 1분기 울토미리스의 국내 매출은 130억 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5% 급증했다. 솔리리스 매출은 28억 원에서 24억 원까지 줄었다. 노바티스가 개발한 경구제형의 PNH 신약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한 업체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암젠 2곳 뿐인 건 이러한 시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환자 수 자체가 적어 임상 진행이 여의치 않다보니 중간에 포기한 업체들도 많다. 그런데도 유럽 의사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에 박수를 보냈다. 초고가약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바이오시밀러 본연의 역할을 실현했다는 이유다. 통상 바이오시밀러가 발매되면 신약 가격이 30% 가량 인하된다.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허가 소식에 스웨덴 정부는 바이오시밀러 처방 전환을 권고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가격에 따라 지금보다 2~3배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고려하면 바이오시밀러에 진심인 업체 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시장확산을 장려할 수 있는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