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대일 칼럼]대학 등록금 정상화가 교육 개혁 첫걸음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청년층 부담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반값 등록금 정책 이후 대학 등록금은 10년 이상 동결돼왔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들과 달리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대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할 것 없이 사립대들은 교수 충원도 어렵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다. 등록금 규제가 이런 부작용을 감내할 가치가 있을 만큼 청년층 부담을 줄여주고 있을까. 그 반대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만큼 고등교육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대졸자라도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기가 어려워지며, 오히려 사교육은 더 늘어 가난한 학생일수록 대입 경쟁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규제할수록 사교육이 늘어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대학 4년간 등록금은 최상위권 사립대도 3500만 원 수준으로 굳이 비교한다면 하버드대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과연 최상위권 대학을 졸업해서 얻는 이득이 평생 4000만 원에도 못 미칠까. 이득에 비해 비용이 낮을수록 명문대에 가려는 학생은 많고 이 초과수요만큼 경쟁은 치열해진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등록금과 정원이 모두 묶여 있는 대학은 수능과 내신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 그 순서 경쟁이 치열할수록 학부모는 사교육을 찾고 학원들은 점수 따기에 최적화된 교육으로 학부모 수요에 부응한다. 사교육을 줄여 보겠다고 입시를 이리저리 바꿔봤지만 초과수요라는 근본 원인을 외면한 개편이 효과를 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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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36만 7000원으로 단순하게 계산하면 초중고 재학 중에 지출되는 총 사교육비는 5285만 원에 이른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 이 액수만큼 추가로 지출할 의향이 있다는 뜻인데 상위권 대학으로 올라갈수록 그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런데 가난한 학생에게는 아무리 등록금이 낮아도 사교육비로 5000만 원을 넘게 써야 갈 수 있는 대학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반면 사교육비 부담이 없다면 등록금이 5000만 원 이상 비싸져도 가난한 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열린다. 등록금 수입이 증가한 만큼 더 많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에는 장학금이 없지만 등록금에는 장학금이 있기 때문에 높은 등록금은 가난한 학생에게 진입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의 재원이며 청년층 부담이 실질적으로 경감될 수 있는 방안이다.

전교조 등 일부에서는 입시 과열과 사교육을 지나친 교육열 탓으로 돌린다. 물론 교육열도 한몫하지만 그런다고 등록금 규제의 폐해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상위권 대학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로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입시 지옥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난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좌절까지 겪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반값 등록금을 놓지 못하는 것은 당장 현시점의 대학생들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학 등록금 자율화에 적극적인 정부는 없었다. 현 정부에서도 인수위원회 시절 논의된 등록금 현실화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고 대신 인공지능(AI) 기반 맞춤형 교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류에 맞는 화두이기는 하나 초중고 모든 과정이 과열된 입시 경쟁에 묶여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역시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하는 데 그치고 말 우려가 크다.

입시 지옥을 강요당하고 대학 진학과 취업에서 좌절을 겪는 것은 청소년들뿐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녀 교육이 힘드니 저출산이 가속화되는 것도 전혀 놀랍지 않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이르다던가. 이제라도 등록금 정상화를 출발점으로 해 제대로 된 대학 자율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 개혁의 첫 걸음이고 청년층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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