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기업 정서가 주류를 이뤘던 더불어민주당에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오너 경영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나왔다. 산업 대전환 시대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오너의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데 민주당도 결국 동의한 것이다. 과거의 민주당 강성 경제정책에 대해 사실상 반성론을 쓰면서 정책 방향을 중도적으로 틀기 위한 워밍업 차원으로 평가된다.
민주당 내 ‘글로벌기업 국제경쟁력 강화 의원 모임’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글로벌 기업을 돕다-반도체 글로벌 경쟁과 삼성의 오너 경영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의 ‘친기업’ 발언이 쏟아졌다. 이재명 대표가 과거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이 시대 최고 권력인 재벌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업들의 오너 경영에 초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것과 비교할 때 이번 친명계 의원들의 발언은 항명에 가까울 정도로 중도·실용적 노선으로 평가된다.
이날 행사를 주도한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은 “민주당이 그동안 공정(公正)을 중심으로 기업을 바라본 게 사실이지만 공정을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 경쟁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기업을 바라봐야 한다”며 “민주당이 반기업 정당으로 비치는 모습을 탈피하고 실용적이고 유능한 정당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의원도 힘을 보탰다. 정 의원은 “한국의 정서·역사·문화와 국민성이 결부되면서 그에 맞는 기업 문화가 형성됐기에 삼성과 같은 일류 기업이 나타난 것”이라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을 해야겠지만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만든 기업 문화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자성’에 재계도 화답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박승희 삼성전자 CR담당 사장은 “고맙고 떨린다”면서 “국내에서조차 삼성을 견제의 대상처럼 보는 시선을 느낄 때는 참 뼈아팠다. 정치권만은 응원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삼성전자를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로 이끈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의 리더십도 언급됐다. 박 사장은 “후발 주자인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최강자가 된 것은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리더십의 결과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과감한 투자, 빠른 의사 결정 등이 더해져 삼성은 반도체 분야 세계 1위가 됐다”고 분석했다.
세미나가 전국경제인연합회 공동 주최로 진행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이후 전경련 해체를 주장해온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경련 패싱’ 기조를 유지했다.
민주당은 그간 당 강령에 ‘재벌 개혁’을 명시할 만큼 기업 비판적 견해를 유지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제계에 손을 내미는 러브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최근 대법원의 ‘타다’ 전 경영진에 대한 무죄 판결에 “타다의 승소는 국회의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 ‘우클릭’을 통해 중도층 확장을 시도하려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세미나를 주최한 김병욱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반기업·규제 일변도의 정당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면서 “민주당이 기업 경쟁력 제고에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실용적인 정당으로 각인되고 외연 확장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