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中 선 넘은 '전랑외교'에…尹, 상호주의 내세워 강경 대응

■中대사 작심 비판

中은 영주권자에 건보·투표권 안줘

여당서 중국인 선거권 제한 목소리

싱 대사 '韓 내정간섭 발언' 논란에

대통령실 "싱, 비엔나 협약 어긋나"

경제계도 갈등 여파 미칠까 촉각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베트남 순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베트남 순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한국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정면 비판한 것은 중국 측 외교 당국자 등이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또 “(한중 간에) 상호주의에 맞도록 제도 개선에 노력해달라”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져 지방선거 투표권, 건강보험 적용 등과 관련해 양국 간 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입법 조치 등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현재 중국은 영주권자에게 선거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아 우리 국민들이 중국 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해 중국인들의 경우 한국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우리 국민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중국인들이 건강보험을 혜택을 받아 지난해 7월까지 5년간 2조 7000억 원대의 건강보험료를 지원받는 등 형평성 논란이 촉발돼왔다. 이런 가운데 여당 내에서 국내 거주 중국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윤 대통령의 이번 당부와 맞물려 입법화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전망된다.

이번 한중 갈등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싱 대사가 쏟아낸 발언에서 비롯됐다. 싱 대사는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며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며 사실상 한국의 대중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더해 최근 한중 관계 악화와 대중 무역적자의 책임을 한국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싱 대사의 발언이 외교관의 신분보장과 특권, 업무 수행에 대해 규정한 ‘비엔나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은 제41조에 협약 상대국의 특권과 면제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할 의무 △접수국의 내정에 개입해서는 아니 될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이른바 늑대처럼 집요하게 힘을 과시하는 ‘전랑 외교’를 개시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국장급인 싱 대사가 개인의 자격으로 프린트까지 준비해와서 한국을 비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 정부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통령실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중국의 공격적인 전랑 외교에 유화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맞대응하는 강수를 선택하고 있다. 싱 대사의 발언이 최근 한중 관계 경색에 시발점이 된 만큼 중국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중국 측이 이 문제를 숙고해보고 우리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싱 대사를 겨냥해 “대한민국의 외교정책 노선에 있어 한국이 헌법 정신에 기초해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으로 동맹국과 협력하며 중국과 상호 존중, 호혜 원칙에 따라서 밝혀왔는데 그러한 대한민국의 정책이 편향적이고 특정 국가를 배제한 듯한, 곡해된 발언을 했기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수석 외교부 수석대변인도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 대사가 언론에 공개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의도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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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은 싱 대사에 대한 조치를 사실상 거부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현지 정례 브리핑에서 “싱 대사가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 직무이며 그 목적은 이해를 증진시키고 협력을 촉진하며 중한 관계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으로,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싱 대사가 유명 리조트에서 무료 숙박을 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성 보도에 주목한다”며 본말을 전도시켰다.

여당 등에서는 싱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 인물, PNG)’로 지정해 추방하는 것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PNG 지정을 단행한 전력이 있다. 1998년 한러 외교관 맞추방 사건 당시 주한 러시아 참사관을 추방했던 것이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9조’는 외교 사절이 주재하는 국가가 언제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외교 사절이 기피 인물이라고 파견국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를 당하면 해당 외교 사절은 본국(파견국)으로 소환당하거나 재외공관에서의 직무를 종료하게 된다. 아울러 기피 인물로 지정된 해당 외교 사절은 통상적으로 72시간 내에 주재국을 떠나야 한다.

우리 외교부는 아직 PNG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중국 측도 우리 정부와의 과도한 외교 갈등 확전을 감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 측이 싱 대사를 적절한 명분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전망이 외교가 안팎에서 제기된다. 싱 대사가 2020년 1월 부임한 후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고 이임하는 명분으로 모양새 있게 교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계 등은 이 같은 한중 간 외교 갈등이 양국 경제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중국 측의 부당한 외교적 처사에 당당하게 대응하되 민간과 경제 분야에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경제계의 진단이다.

구경우 기자·신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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