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노조의 불법 파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개별 조합원의 책임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번 판결은 노조의 쟁의 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을 때 개별 노조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다룬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도 연관돼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앞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11월15일부터 12월9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1, 2라인을 점거해 278.27시간 동안 공정이 중단됐다. 노조원들은 2013년 7월12일에도 현대차 울산3공장을 점거해 일부 공정이 63분간 중단됐다. 현대차는 파업으로 인한 조업 중단으로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을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파업 참여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고 현대차의 손해배상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파업 발생 경위 등을 고려해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울산공장 1, 2라인 사건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20억원을, 울산3공장 사건에 대해서는 23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쌍용차가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역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쌍용차는 노조원들이 2009년 5월26일부터 2009년 8월6일까지 평택공장 생산시절을 점거하는 이른바 '옥쇄파업'을 벌여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원들을 상대로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 2심은 회사 측 손을 들어주면서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해 33억114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면서도 "쌍용차가 2009년 12월경 파업복귀자들에게 지급한 18억8200만원은 파업과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해당 금액을 배상금 산정에서 제외하라고 판시했다. 회사가 경영상 판단에 따라 지급한 금액을 파업으로 인한 손해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두 사건의 쟁점은 야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과 일맥상통한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대해 개별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입법을 대체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배상액의 범위는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로 한정되며, 상당인과관계의 존재에 관해서는 피해자(기업)이 증명 책임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