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 조합원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정·재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노동계는 해당 판결을 두고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에 대해 각각 ‘관련이 없다’ ‘당위성이 커졌다’는 식의 정반대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 손해배상 판결로 ‘공’이 법원 손을 떠났으나 여진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판결 취지가 오해될 수 있게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잘못된 주장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근거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불법 파업 참여자들이 부담해야 할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뿐이라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봉쇄·제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공동 책임이었던 손해배상 금액을 쟁위행위 가담자 개인의 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 부담하게 바꿨기 때문에 기업이 받는 손해배상 청구 금액도 동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노사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책임 비율도 법원이 결정한다’며 기업에 입증 책임을 부여한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는 해당 판결의 취지가 야권과 노동계가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의 입법 목적과도 맞닿았다며 여권은 물론 산업·재계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재계는 “노조와 개별 조합원에게 (불법 파업에 따른) 공동 책임은 묻지 말라는 의미다” “과격 시위와 파업만 양산시킬 위험이 있다”는 등 거친 반응을 잇따라 쏟아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개별 조합원들의 책임 제한 정도를 노조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등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것은 사측이 조합원 각각의 불법행위 가담 정도를 파악해 입증하라는 것”이라며 “이는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도 판결 다음 날인 16일 “정치 판결”이라며 강도 높게 지적했다.
정·재계 반발과 별도로 노동부와 노동계는 판결을 사이에 두고 입장 차만 분명히 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입법의 공은 국회가 들고 있으나 양측이 해당 판결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평행선만 걷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부는 전일 입장 자료를 내고 “판결은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액에 대한 분담 비율을 공동 불법행위자 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부진정연대책임의 예외를 규정한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부진정연대책임이란 공동으로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노동부는 전일 자료에서 이정식 장관이 직접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불법 파업이 조장될 수 있다”는 기존 우려를 재차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로 노란봉투법 입법의 당위성이 보강됐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부진정연대책임 예외를 인정하고 기업들로부터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 피해를 본 노조를 보호하는 등 노란봉투법의 두 입법 취지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시민단체 ‘손잡고’는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사측이 조합원 전원에 부진정연대책임을 묻는 데 제동을 건 배경에는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위축이 있다”고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