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을 꼭 선택해야 하나요?” 요즘 퇴직연금 가입자들 중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 듯하다.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해 7월 12일. 금융회사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업자가 퇴직연금 규약을 반영하는 시간을 감안해 1년의 유예 기간을 뒀다. 유예 기간이 끝나가자 본격적으로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디폴트옵션을 가입하라고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모두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았을 때에 대비해 미리 운용 방법을 지정하는 것이다. 디폴트옵션의 우리 말은 관련법에서 ‘사전 지정 운용 제도’라고 부른다. 자기 명의로 된 퇴직계좌의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용 대상이다.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형)은 디폴트옵션 대상이 아니다.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는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는지 기한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정하지 않았다고 불이익을 주거나 처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상품을 정하지 않으면 금융회사에서 분기 1회 이상 안내를 하는 것이 전부다.
별 불이익도 없는데 애써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선택을 할 때는 ‘부작위(不作爲)’에 따른 유불리만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위(作爲)에 따르는 결과도 검토해야 한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없더라도, 선택할 때 혜택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디폴트옵션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DC형 퇴직연금에서 가입한 정기예금의 만기가 도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가입자가 만기 도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될까? 만기 예금 상환액은 현금성자산으로 남아 낮은 금리로 운용된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정해두면 자금이 6주 이상 현금성 자산에 방치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DC형 퇴직연금에 새로 가입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신규 가입자 중 회사가 부담금을 입금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IRP 가입자도 자동이체 된 부담금을 종종 방치하곤 한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정해두면 신규 적립금이 2주 이상 방치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신규 자금과 만기 상환액을 장기간 방치할 때만 디폴트옵션 제도가 유용한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 운용을 잘하는 고수들 중에는 일부러 디폴트옵션 상품을 찾는 이들이 있다. 같은 유형의 퇴직연금 상품과 비교하면 디폴트옵션 상품은 금리는 좀 더 높고, 수수료는 좀 더 싼 경향이 있다. 그래서 디폴트옵션의 적용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해당 상품을 매수하기도 하는데, 이를 디폴트옵션에 바로 들어간다고 해서 ‘옵트-인(opt-in)’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