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여명]BTS와 금융허브의 꿈

■노희영 금융부장

비합리적 규제·경쟁력 없는 세제에

예측불가한 정책, 해외투자자 막아

관치금융 거두고 핀테크 역량 집중

차별화된 미래형 금융중심지 키워야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맞아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열린 ‘2023 BTS 페스타’에는 국내외 팬 등 40만 명이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BTS는 한국 문화를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K팝 아티스트 최초 ‘빌보드 200’ 1위를 비롯한 각종 신기록에 더해 콘서트 1회당 최대 1조 20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낸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공연 전단을 돌리던 무명 그룹이 데뷔 10년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BTS 10주년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한 모습을 보니 “금융 산업에서도 BTS 같은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금융 규제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던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말이 떠오른다. 윤석열 정부의 첫 금융정책 수장인 그는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첫 공개회의인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이 같은 야심 찬 발언을 했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김 위원장이 밝혔던 제도 개선 과제 중 아직까지 가시화된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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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만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BTS가 데뷔한 10년 전에서 10년을 더 거슬러 2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세계적 금융회사 아시아 본부를 서울로 끌어들이겠다며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3년마다 금융 중심지 기본 계획을 발표하며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해외 금융회사가 아시아 헤드쿼터를 한국으로 옮겼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김 위원장조차 지난달 말 금융 중심지로 지정돼 있는 서울과 부산의 위상과 관련해 “당초 목표했던 동북아 금융허브가 됐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20년이 지나도록 금융허브가 되지 못한 이유로는 과도한 규제와 경쟁력 없는 세제 등 제도적 문제가 꼽힌다. 최근에 만난 미국·유럽계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한국의 금융 환경에 대한 본사의 시각이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비합리적 규제가 존재하고 이마저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변화할지 몰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올해 5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대표단과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을 찾아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열고 “규제·감독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해외 투자자들은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원장과 IR에 동행했던 한 금융회사 CEO는 “해외 투자자들이 찾아와 금융감독원장이 한 말을 믿어도 되겠냐고 계속 묻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 당국의 말 한마디에 은행들이 줄줄이 대출금리를 낮추고 각종 금융 지원책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준비해야 하는 후진적 관치 금융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청년층의 목돈 만들기를 지원한다며 이달 15일 출시한 청년도약계좌의 기본 금리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이 당초 잠정 3.5%로 제시했다가 일제히 4.5%로 올리고 우대금리는 2.0%에서 1.0%로 내렸다. 최종 금리 공시 직전 금융 당국이 5대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기본 금리를 4.5%로 맞추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사실상 금리 담합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정보기술(IT)과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 산업 등에 역량을 집중한다면 전통적인 금융허브와는 차별화된 미래형 금융 중심지를 만들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외치는 금융 규제 혁신이 제대로 추진만 된다면 금융허브의 꿈, BTS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 배출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2013년 6월 첫 싱글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의 타이틀곡 ‘노 모어 드림’에서 “얌마 니 꿈은 뭐니”라고 물으며 등장했던 무명의 BTS가 10년 후 ‘21세기 팝 아이콘’이 된 것처럼 말이다.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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