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관점] 다시 벌어지는 美中 경제력 격차…韓 초격차 기술·시장 다변화 속도 내야

◆美中 GDP 규모 경쟁 향배

국제기관, 시진핑 체재 ‘성장 한계’ 회의적 시각 확산

中 노동력 감소·부채 급증·재정 고갈 등 곳곳에 암초

시장경제 활력과 혁신·과학기술 발전이 승패 가를 듯

신성장동력 발굴·R&D 파격 지원 등 국가 총력전 절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 격차가 다시 벌어질 것이라는 국제 경제기관들의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구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은 최근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시점을 2032년에서 2039년으로 7년이나 늦춰 잡았다. 중국의 노동인구 급감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가 생산성 둔화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지난해 중국 GDP가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을 2026년에서 2035년으로 연기했다.

당초 2030년 전후에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서방 싱크탱크의 예측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중국은 ‘공동부유(共同富裕)’로 대변되는 반(反)시장 정책과 미중 패권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급격한 자본 이탈과 성장률 둔화를 겪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8일 올해 중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6%에서 5.4%로 낮추면서 인구와 부동산 침체,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 지정학적 긴장 등을 중국의 중장기적 도전 과제로 제시했다. “2035년까지 중국의 GDP를 2019년의 두 배로 키워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쑥 들어간 ‘중국 경제의 미국 추월론’

1992년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 패권 변화를 예측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중국이 1970년대 말 경제 개혁을 실시한 후 연평균 9.5%의 성장률을 지속하면서 2020년 안에 미국의 GDP를 따라잡아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공신력 있는 국제기관의 보고서에서 중국의 미국 추월을 예고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정식 회원국에 가입한 후 이탈리아·프랑스·영국·독일을 차례로 제친 데 이어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강국으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두 나라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초반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드러냈지만 2021년에는 약 5.5%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지난해 중국 GDP는 18조 1000억 달러로 미국의 25조 4600억 달러와 약 7조 3600억 달러의 격차를 보였다. 중국이 미국을 GDP에서 71%가량까지 따라잡은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GDP 순위 역전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변화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에 제시했던 미중 간 경제력 역전 시점을 2025년에서 2035년으로 늦춰 잡았다. 일본 경제연구센터는 아예 미중의 경제력 역전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는 수정 전망을 내놓았다. 블룸버그도 앞으로 10년 내 미중 간 경제력 역전은 불가능하다는 예측을 제시했다. 영국의 글로벌 경제 분석 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국 경제 규모가 2030년쯤 미국의 87%까지 커지겠지만 2050년에는 다시 미국의 81%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지난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관련해 “1960년대 러시아, 1990년대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측을 떠올리게 된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국의 집중 견제로 결국 경제 규모를 추월하는 데 실패하는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미국의 경제 조사 기관 콘퍼런스보드(CB)처럼 2031년 중국 GDP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기관은 소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의 세계 1위 경제 규모 전망을 당연시했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거세지는 ‘피크 차이나론’



시 주석은 이달 초 내몽골을 시찰하면서 “극한 상황에도 국가 경제의 정상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중국 지도부가 궁지에 몰린 경제 상황을 인정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중국이 대안으로 내건 것은 대내 순환으로 대외 순환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이른바 ‘쌍순환(雙循環)’ 전략이다. 하지만 내수 경기가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 데다 수출마저 회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기사



중국 경제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피크차이나(Peak China)론’도 확산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함께 과도한 부채비율, 미국의 기술 통제에 따른 중국 첨단산업의 성장 둔화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다. 미국의 지정학 분석가인 피터 자이한은 “중국이 2030년 이전에 인구 문제로 경제적 붕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중국의 신생아 수는 956만 명으로 1949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100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올해는 800만 명도 깨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16~59세)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74.5%, 2020년 68.5%에 이어 지난해에는 62%로 떨어졌다.

중국의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3월 말 기준 28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 말 141%에 머물렀던 부채 비율이 국가 주도 부양책으로 급등하면서 정부의 운신 폭을 제한하고 있다. 과도한 부채와 부동산 거품에 가려 있던 중국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중국의 현재 상황이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빠른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노동력과 소비 성향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한계 기업이 은행 빚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다는 관측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개발도상국이 고소득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중진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오히려 저소득 국가로 퇴조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송백훈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은 “과거 세계의 제조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은 외국인 투자 기피와 동남아의 부상으로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져 미국과 다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국내외 투자를 대거 끌어들이는 미국과 달리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미중 갈등 해소라는 절박한 과제가 존재한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면서 긴장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중 패권 전쟁은 계속된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는 지난해 종신 집권을 앞둔 시 주석을 겨냥해 ‘고마워요, 시진핑’이라는 제목의 야유성 칼럼에서 “시진핑의 3연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축복의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부재한 중국이 시장경제와 자유를 북돋지 않으면 미국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당국이 기업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외려 경제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많다. 최근 중국이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나선 것도 성장 정체를 의식한 초조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강력한 통제 시스템 위주의 사회주의적 영향력 확대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발전 방식의 질적인 변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주중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도 지난해 중국에 이념이 경제를 압도하는 변덕스러운 정책 변경에서 벗어나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최근 ‘과학기술사회주의’를 내걸고 반도체나 전기자동차 등 특정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기술 도입이나 이전이 어려워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경제 도약을 위해 원가절감형 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노동집약적 생산 방식에서 첨단 기술집약적 구조로 이전해야 할 힘든 정책적 과제를 안고 있다”며 “결국 시장경제의 활력과 혁신, 과학기술 발전이 패권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대 시험대에 오른 한국 경제

중국의 성장에 의존해온 한국 경제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교역·투자 의존도를 낮추며 시장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2018년 26.8%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올해 1분기 19.5%까지 줄었다. 우리 경제가 중국의 저성장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동남아·인도·중동·유럽·북미 등으로의 수출시장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송 학회장은 “한국이 독자 기술을 가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면서 “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파격적인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업계는 투자 확대를 위해 경쟁국보다 저조한 R&D 세액공제율 수준을 2%에서 6% 선으로 높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해서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전폭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치열한 글로벌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으로 낡은 규제와 기득권을 뛰어넘는 ‘창조적 파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앞으로 중국의 구조적 취약성이 우리 경제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시장 공략에 과감히 나설 수 있도록 범부처 차원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