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투자든 생활이든 리스크를 줄이라는 말이다. 좁은 범위에서 이런 진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다만 지금처럼 인류가 식량을 한 품종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떨까. 세계화와 대량생산은 그동한 식량 공급을 급격히 늘렸다. 다만 이는 위태로운 단일 품종 집중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달걀이 모두 깨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로 번역 출간된 ‘사라져 가는 음식들(원제 Eating to extinction)’은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류사와 함께 해 왔던 수많은 음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이는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야생·곡물·채소·육류·해산물·과일·치즈·알코올·차·후식 등 10개 분야에서 음식과 그의 재료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에 다르면 전세계의 음식은 모두가 점차 똑같아지고 있다. 단일 품종으로 대량생산되는 재료에 따른 것이다.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곡물의 씨앗은 카길 등 다국적 4개 업체의 손에 장악돼 있고 세계 치즈 생산의 절반이 한 곳에서 제조한 박테리아와 효소로 생산된다. 돼지고기는 아주 소수의 돼지 유전자에서 비롯되고 특히 젖소와 바나나는 홀스타인·캐번디시라는 단 하나의 품종만이 각각 국제적으로 거래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산업혁명에 맞먹는 녹색혁명에 따른 귀결이라고 지적한다. 80억 인류의 생존과 소비 증가에 맞추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수확량을 늘려야 했고 따라서 효율성에만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런 어마어마한 단일 경작 품종을 심기 위해 넓은 산림을 밀어버리고 그 땅에 뿌릴 비료를 만들려고 하루에 수억리터의 석유를 태우고 있다. 이에 따라 선택받지 못한 식물과 동물 100만종이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영국 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생물다양성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문명의 여명을 간직한 튀르키예의 황금빛 밀과 함께 북극해 인근 페로제도에서 양고기 발효식품, 베네수엘라에서 석유의 대안으로 꼽히는 크리오요 카카오를 찾아본다.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수렵채집인인 동아프리카의 하드자족까지 만났다.
결국은 현재의 식량시스템으로는 결국 인류가 지탱하기 불가능하다고 적시한다. 다양성의 파괴와 단일 종에 대한 집착은 이들 작물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나나다. 유전적으로 하나의 복제체인 바나나는 포자 몇 개만으로 농장 전체를 초토화 시키는 파나마병(시들음병)에 타격을 받고 있다. 감귤류 역시 감귤그린병으로 병들고 있다. 공장식 사육 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닭은 조류독감(AI)에 각각 취약하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하나가 인류 사회의 대혼란을 일으키고 위기를 겪게했다. 단일 품종 대량생산을 위해 방치해 두었던 다양한 작물들을 복원해 활용하는 것이 이러한 위협을 회피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유 음식이 없어지는 것은 고유 문화를 없애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이 존재하는 줄 알게 되면 그것을 지키는 데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논산 ‘오계(烏鷄)’를 찾아본다. 몸집이 작고 느리게 자라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전통 문화로서 또 최고의 보양식으로 평가받는 이 품종이 세계에서 매년 700억 마리가 도축되는 공장식 사육 닭들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2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