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5대 상사 주식의 보유 비중을 늘렸다.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버핏은 이들 주식을 살 때 엔화를 빌려 자금을 조달했다. 엔화의 가치가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반면 그가 산 일본 상사 기업들은 영업도 해외에서 하고 기능성 통화도 달러다. 결국 버핏은 무늬만 일본 주식을 샀을 뿐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산 셈이다.
버핏은 왜 엔화 약세를 전망했을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는 266%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엔화는 아직 안전자산으로 인정받는다. 민간 저축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공공 부채는 9조 2000억 달러 수준이나 가계가 저축해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는 14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의 고령화는 노인들이 헬스케어 및 생계비 목적으로 기존 저축을 소진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일본의 민간 저축은 줄어들고 이것이 엔화 가치를 약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인은 아직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지만 고령화 속도는 세계 선두권임에 틀림없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프랑스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시켰다. 그 이유는 연금 부실에 대한 우려다. 서구 선진국들의 연금은 본인이 평생 저축해 모은 돈을 은퇴 이후 받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그렇다면 크게 부실해질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길어질 것은 감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명이 늘어 추가되는 생계비는 정부가 세금으로 보태줘야 한다.
한국의 연금은 그해 걷힌 연금 수입을 수혜자들에게 나눠주는 구조다. 노인들의 연금 부담을 젊은이들이 지는 셈이다. 한국의 한 연금은 운용자산 규모가 9조 원인데 한 해 지급해야 할 돈이 11조 원이었다. 연금 자산 전체가 수익자에게 한 해 지불할 돈도 못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족한 부분을 세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실 연기금들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이는 한국의 통화가치를 위협한다.
정부와 민간 모두 저축이 줄고 빚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는 다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고금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고집을 꺾고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다. 지난 1년 반 한국 원화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렸기 때문인데 이제 곧 반대 방향으로 가면 원화의 가치도 잠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인들은 원화 약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일부는 달러로 바꿔 놓아야 하지 않을까. 수출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달러를 벌어오지 못하면 원화 약세 폭은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