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우리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엘리엇의 주장을 국제중재기구가 사실상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대해서만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애초에 엘리엇이 피해액을 과도 청구한 점을 감안하면 '상처 뿐인 승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법무부가 배포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선고'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재판부는 △국민연금은 사실상 정부 기관이며 △정부가 국민연금 합병에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한미 FTA 협정상 최소 기준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엘리엇 측 주장을 전부 인정했다.
당초 우리 정부는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4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한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했다.
이에 정부는 국민연금은 정부기관이 아니라는 등 주장을 펼쳤지만 중재 판정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피해액 산정에 있어 중재판정부가 우리 정부 측 의견을 들어주며 엘리엇이 요구한 금액에 비해 대폭 낮아졌다. 중재판정부는 삼성물산 주식의 실제 주가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한다는 정부 주장을 인정해 5358만6931달러(약 690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엘리엇 측 주장대로 '합병이 부결됐을 경우 예상되는 삼성물산 주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했다면 14배에 달하는 7억7000만 달러(약 9917억 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물어줘야 했을 수도 있다.
엘리엇이 사실상 패소한 것으로 보이지만, 뜻밖에 쾌재를 부르는 모양새다. 엘리엇은 미국 현지에서 배포한 입장문 등에서 "엘리엇의 승리(Victory for Elliott)"라며 "중재 판정부의 결론이 사실에 비추어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의 미래가치를 부풀려 피해액을 과도하게 청구했기 때문에 당초 요구한 7억7000만달러(약 1조원)의 7% 정도인 5358만달러(690억원)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한 것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번 판정에 대해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 대리 로펌 및 전문과들과 함께 판정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판정 취소소송 등 후속 조치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중재 당사자 판정 선고일로부터 28일 이내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